지난 1월 '용산 참사'가 벌어졌던 서울 용산구 국제빌딩4 재개발구역 내 남일당 건물.희생자 유족들이 국가 차원의 보상을 요구하면서 철거작업은 5개월째 중단됐고 사업 추진을 서두르던 재개발조합은 손을 놓은 상태다.

이곳에서는 상가 세입자들이 재개발로 인한 보상금(영업손실 보상금)이 턱없이 적다며 반발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세입자가 아닌 일부 조합원들도 지난해 설계 · 시공업체와의 계약서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합장 등을 고소했다. 이 구역에서는 모두 26건의 민사 · 행정소송이 제기됐다.

용산 재개발지역(도시개발)은 대부분 소송과 주민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제업무지구가 조성될 서부이촌동 일대에는 이해관계가 다른 주민들이 만든 비상대책위원회만 11개에 달한다. 개발에 찬성하는 주민들이 '통합개발 무산되면 우리집값 반토막난다. 대안없는 억지주장,비대위는 각성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면 반대파들이 곧바로 떼어내는 일이 되풀이된다.

최근 마포구 아현뉴타운 내 아현3구역에서는 조합원들이 임시총회를 열어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된 조합장을 해임했다. 염리3구역에서는 조합이 회계감사 내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며 대의원들이 조합을 고소했다. 동작구 상도11구역의 경우 주택재개발구역 지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이 제기됐다. 이런 갈등으로 4~5년이면 끝날 재개발사업이 지연되기 일쑤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기간만 따질 경우 2~3년이면 충분하지만 주민 갈등과 각종 소송으로 10년을 넘길 때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외부 투기세력이 유입돼 '지분 쪼개기'가 성행하고,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내쫓긴다.

법원도 지방자치단체의 졸속적인 사업 인 · 허가와 재개발조합의 편법적인 업무 처리에 제동을 걸고 나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고등법원 제16민사부는 "사전에 철거 및 신축 분담 비용과 사업 완료 후 얻는 이익 등을 적시하지 않은 채 설립된 서울 중구 순화동 도심환경정비사업조합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개발컨설팅 업체인 ㈜진일C&C의 이인경 회장은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올 경우 안 걸릴 조합이 없어 대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재개발지역은 서울 144곳(598만672㎡)을 포함해 경기(256곳) 인천(212곳) 부산(239곳) 대구(154곳) 광주(28곳) 등 6개 대도시에서만 1000곳이 넘는다. 재개발정보 업체인 예스하우스의 전영진 대표는 "공영개발을 강화하는 등 재개발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건호/이호기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