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끼리 접을 붙일 때 뿌리가 무엇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연기도 우리 것을 몸에 익힌 뒤 서양 것을 보태야 완성도가 높아집니다. 우리 연극의 원형은 탈춤입니다. "

국내 연기파 배우의 산실인 서울예술대 연기과의 조운용 교수(59 · 사진)는 29일 "한국적 연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통극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 교수가 '뿌리 있는' 연기를 강조하는 건 그 자신 '봉산탈춤 이수자'로 누구보다 탈춤에 대해 조예와 관심이 깊기 때문이다.

그는 꼭 30년 전인 1979년 서울예대에 민속연구회를 만들면서부터 탈춤과 현대극의 '만남'에 공을 들여왔다.

그는 "30년 넘게 탈춤을 추다 보니 탈 귀신이 씌었나 보다. 아프다가도 탈만 뒤집어쓰면 기운이 펄펄 난다"며 봉산탈춤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봉산탈춤과 서울예대의 인연은 설립자인 고(故) 동랑 유치진 선생이 전통극의 부활을 꿈꾸며 1962년 '드라마센터 가면극회'를 세우면서 맺어졌다.

조 교수는 "김기수 신구 김재권 등 대 선배들이 1 · 4후퇴 당시 월남한 황해도 봉산 출신 예술인으로부터 봉산탈춤을 전수하고,이를 기록영화로 만드는 등의 노력 끝에 1967년 봉산탈춤이 중요 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됐다"며 "1977년부터 뉴욕 시카고 호놀룰루 등 미국 20개 도시에서 40회 순회공연을 하고 일본에까지 돌았을 때의 희열은 말로 다 못한다"고 회상했다.

해외공연 당시 1인 5역을 맡는 것은 다반사였다. 극이 끝나면 피곤에 지쳐 무대 위에서 잠들기도 하고,몇 번의 탈진과 경련으로 구급차를 부른 적도 많다고.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서울예대 연기과는 현재 한국전통극을 정식교과로 채택해 2학기 과정으로 수업하고 있다. 또 '서울예대 민속연구회'가 1979년부터 매년 1회 봉산탈춤 해외공연을 해오고 있다. 개그맨 송은이 김진수 등 많은 연예인이 이 동아리를 거쳐갔다.

이휘향 최명길 박상원 독고영재 전도연 등이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는 것도 우리 가락과 춤을 배운 덕분이라고 조 교수는 말했다.

조 교수는 최근 남산 국립극장에서 5시간짜리 봉산탈춤 완판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데 이어 6월29일부터 2주간 영국 런던의 뉴몰든에서 4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탈춤축제'를 연다. 이번 영국 공연은 윤복희 콘서트,난타와 함께 한국문화축제의 일환으로 탈춤 워크숍,탈 만들기 등 부대행사도 곁들여질 예정이다.

조 교수는 "탈춤이 명맥은 이어오고 있으나 국민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며 "한삼자락을 자신의 손끝에서 느껴보거나 탈 속에서 호흡해 보면 느낌이 다른텐데…"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글=김보라/사진=김병언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