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으로 투병하던 탤런트 여운계 씨가 22일 오후 8시7분 별세했다.

향년 69세.

여운계 씨는 한동안 폐암 투병 사실을 외부에 숨겨왔으나, KBS 2TV 아침극 '장화홍련'의 첫 방송을 앞둔 지난달 23일 급성 폐렴으로 드라마에서 하차하면서 폐암에 걸린 사실이 알려졌다.

이어 인천성모병원에 입원한 그는 한동안 무균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얼마 전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왔다.

이에 앞서 그는 2007년 9월 신장암으로 SBS TV '왕과 나'에서 하차했으며, KBS 2TV '며느리 전성시대'에는 석달여 치료 후 복귀한 바 있다.

당시 수술이 잘돼 완쾌하는 듯 했으나 암 세포가 폐로 전이되면서 그는 다시 폐암 투병을 해야했다.

무학여고 재학 시절 방송반, 합창반에서 활약했던 고인은 1958년 고려대 국어국문과 진학 후 대학극회 단원으로 활동하며 연기인생을 시작했다.

이낙훈 이순재 오현경 씨 등과 함께 '대학극 1세대' 였던 그는 1950~60년대 박근형 씨와 함께 '대학극의 2인'으로 불릴만큼 명성을 날렸다.

대학 졸업 후 1962년 실험극단 단원으로 직업 연기자의 길을 택한 그는 같은 해 TBC 특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그는 생전 한 인터뷰에서 "배우가 되겠다고 하니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다.

할 수 없이 교직과목 이수 후 학교로 가려고 했는데 기다려도 학교에서 자리가 안 나더라. 그래서 연기를 하게됐다.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 최초의 일일 연속극 '눈이 나리는데'에서 시골 다방 마담 역으로 브라운관에 첫발을 내딘 고인은 드라마가 연기자들의 생방송 연기로 진행되던 시절부터 40여년간 한국 드라마계의 산 증인으로 활동했다.

20대부터 노역 연기를 전문으로 펼쳐온 그는 '아씨'(1972) '토지'(1986) '몽실언니'(1990) '사랑이 뭐길래'(1991) '아들의 여자'(1994) 'LA 아리랑'(1995) '청춘의 덫'(1999) '내사랑 누굴까'(2002) '대장금'(2003) '저 푸른 초원위에'(2003) '오 필승 봉순영'(2004) '내이름은 김삼순'(2005) '불량가족'(2006) '내사랑 못난이'(2006) '쩐의 전쟁'(2007) '며느리 전성시대'(2007) 등 수많은 드라마에서 어머니와 할머니로 시청자를 만났다.

고약한 할머니, 순박하고 인자한 어머니, 코믹하고 귀여운 이모 등의 배역을 넘나든 그는 특히 '대장금'에서 연기한 수라간 큰 상궁 역으로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영화 데뷔작은 1968년 개봉한 이영표 감독의 영화 '엄마의 일기'다.

여배우가 드물었던 1950~1960년대 고인은 문희, 남정님, 윤정희 씨 등 미녀 여배우들을 돋보이게 해주는 개성파 조연 역할로 인기를 끌었다.

젊은 시절 '별명 붙은 여자'(1969) '별난여자'(1970) '달려라 만석아'(1979) '순악질 여사'(1980) '혼자 도는 바람개비'(1991) 등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 2000년대 들어 '마파도'(2005)와 '마파도2'(2007)로 스크린에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또 2000년 고대 국문과 교우회장을 맡는 등 평소에 모교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그는 2005년에 고대 개교 100주년 기념 연극 '당나귀 그림자 소유권에 관한 재판'에도 참가 했다.

47년의 연기 인생 동안 그는 후배 연기자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다.

'대장금' 등에서 호흡을 맞춘 견미리가 그를 '엄마'라고 부르는 등 후배들은 빼어난 연기력과 넉넉한 인품으로 귀감이 된 그를 실제 어머니처럼 모셨다.

TBC 연기대상, KBS 우수프로그램평가상 연기상, 동아연극상 여우주연상(1966), 백상예술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1974), SBS 연기대상 특별상(1996), KBS 연기대상 공로상(2000) 등을 받았고, 2001년 법무부 범죄예방위원회 연예인위원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남편인 차상훈(72) 전 경기대 교수와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5일 오전 9시.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