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문순태씨(68)는 버스도 들어오지 않고 휴대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전라도 무등산 뒷자락의 고향 마을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곳은 사람이 아닌 고라니가 집 앞을 느럭느럭 오갈 정도의 오지라고 한다.

종전 분단 문제 등에 천착해온 문씨는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나 깊은 골짜기에 은둔하듯 살다 보니 오랫동안 놓쳤던 것들이 새로운 빛깔로 다가왔다"면서 "아주 작은 들꽃을 통해 우주를 보듯 낮은 자세로 살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문씨의 새 소설집 《생오지 뜸부기》(책만드는집)는 고향마을에서 터득한 삶을 그려내고 있다. 수록된 8편의 단편 소설 모두가 고향마을 '생오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농촌의 소박한 일상에서 깨달음을 길어올리는 사람들이다.

표제작 <생오지 뜸부기>에서 도시에서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리다 시골로 내려온 '나'는 멸종 위기에 처한 뜸부기를 찾는 데 집착한다. 그 많던 뜸부기가 사라져간 이유는 '논 한 마지기에서 쌀 두 가마니만 내 묵어도 되는디,네 가마니,다섯 가마니씩이나 묵을라고 욕심을 부리는 통에' 농약을 사용하면서부터였다. '나'는 '콩 한 조각도 열 사람이 나눠 먹는다는 시골 인심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과거의 소중한 미덕을 상징하는 뜸부기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탄피와 호미>는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행복은 있게 마련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내와 사별한 '나'와 탈북하는 도중 아이를 잃어버린 점순,아홉살 때 성폭행을 당한 영미 세 사람은 시골에서 가족처럼 지낸다. 이들은 서로 상처를 핥아주면서 '마치 낯선 시골길에서 마지막 버스를 놓치고 기약 없이 걸어가다가,가까스로 달구지를 얻어 타고 언뜻 단잠을 자는 기분'이 드는 사이가 된다.

<생오지 가는 길>의 베트남에서 시집온 쿠엔은 청국장도 척척 담글 만큼 한국에 익숙해졌지만 같은 동네 사는 조씨를 영 마땅찮게 여긴다. 베트남전에 참전해 몸이 불편해진 조씨와 역시 베트남전 때문에 친척들을 잃은 쿠엔은 물과 기름같은 상극이었다. 조씨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쿠엔은 팔팔 끓는 청국장을 통해 마음을 열게된다. 《생오지 뜸부기》에는 또 <눈향나무> <황금 소나무> 등의 단편이 실렸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