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결혼은 무미건조…慢畵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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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구보 결혼식 방명록에 남긴 친필 내달 15일 공개
'一(일).面會拒絶 反對(면회거절 반대).結婚(결혼)은 卽(즉) 慢畵(만화)에 틀님업고/慢畵(만화)의 實演(실연)에 틀님업다/慢畵實演(만화실연)의 眞摯味(진지미)는/ 또다시 慢畵(만화)로- 輪廻(윤회)한다. '
시인 이상(1910~1937년)이 절친한 친구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년)의 결혼식 방명록에 남긴 친필 축하글이다. 이 글은 구보의 장남인 박일영씨(70)가 다음 달 15일부터 서울 청계천문화관에서 열리는 구보 유물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찾아내 빛을 보게 됐다.
이번에 발견된 이상의 축하글 뒤에는 1934년 10월27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이상의 서명 중 '상(箱)' 자가 적혀있다. 박일영씨는 "20여명의 축하글이 적힌 방명록에 단짝이던 이상의 글이 없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겼는데,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적 감정 등을 거쳐 첫 장에 '以上(이상)'이라고 서명한 글이 이상의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상의 축하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만화(慢畵)'라는 단어다. 보통은 '넘친다'는 뜻의 '만(漫)'을 쓰는데 이상은 부수를 바꿔 '게으르고 느슨하다'는 뜻의 '만(慢)'을 대신 썼다. 원래 '만화(漫畵)'는 허황되고 넘친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이상이 부수를 하나 바꿔치기해 '만화(慢畵)'라고 씀으로써 '느슨하고 일상적인 그림'이라는 의미로 변했다.
한자를 바꿔쓰는 건 이상 작품에서 보이는 특징 중 하나로,그는 시에서 '조감도(鳥瞰圖)'를 '오감도(烏瞰圖)'로 달리 쓰거나,'매춘(賣春)'에 산다는 뜻의 '매(買)'를 대신 쓰기도 했다.
이상은 또 축하글에서 '면회거절 반대'라는 구절을 남기며 결혼 후에도 친분이 변치 말자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상과 구보는 함께 구인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권영민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결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의미를 전달해 결혼이란 단지 일상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 획을 살짝 바꾸는 장난은 이상이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시인 이상(1910~1937년)이 절친한 친구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년)의 결혼식 방명록에 남긴 친필 축하글이다. 이 글은 구보의 장남인 박일영씨(70)가 다음 달 15일부터 서울 청계천문화관에서 열리는 구보 유물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찾아내 빛을 보게 됐다.
이번에 발견된 이상의 축하글 뒤에는 1934년 10월27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이상의 서명 중 '상(箱)' 자가 적혀있다. 박일영씨는 "20여명의 축하글이 적힌 방명록에 단짝이던 이상의 글이 없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겼는데,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적 감정 등을 거쳐 첫 장에 '以上(이상)'이라고 서명한 글이 이상의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상의 축하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만화(慢畵)'라는 단어다. 보통은 '넘친다'는 뜻의 '만(漫)'을 쓰는데 이상은 부수를 바꿔 '게으르고 느슨하다'는 뜻의 '만(慢)'을 대신 썼다. 원래 '만화(漫畵)'는 허황되고 넘친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이상이 부수를 하나 바꿔치기해 '만화(慢畵)'라고 씀으로써 '느슨하고 일상적인 그림'이라는 의미로 변했다.
한자를 바꿔쓰는 건 이상 작품에서 보이는 특징 중 하나로,그는 시에서 '조감도(鳥瞰圖)'를 '오감도(烏瞰圖)'로 달리 쓰거나,'매춘(賣春)'에 산다는 뜻의 '매(買)'를 대신 쓰기도 했다.
이상은 또 축하글에서 '면회거절 반대'라는 구절을 남기며 결혼 후에도 친분이 변치 말자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상과 구보는 함께 구인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권영민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결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의미를 전달해 결혼이란 단지 일상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 획을 살짝 바꾸는 장난은 이상이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