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붐 속에 화려한 비상을 꿈꾸던 와인바들이 최근 불황으로 문을 닫거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스타벅스' '커피빈' 같은 커피전문점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비싼 이탈리안 커피를 팔며 성업 중인 이들 커피전문점의 전신은 소리 없이 사라진 다방이다. 다방은 해방을 전후해 문인과 지식인들이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세상을 토론하던 곳이다. 1970~80년대에는 커피 한잔 하자며 작업을 걸고,달걀 노른자 띄운 모닝커피에 덤으로 나오던 도라지위스키 한 잔을 마시며 백수들이 노래를 신청하면서 시간을 죽이던 장소이기도 하다.

지난 50년 동안 커피 마시는 공간은 이처럼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새롭게 시작된 우리의 와인문화는 거의 백지상태다. 특히 마시는 인프라도 아직 걸음마 단계다. 과도한 실내 장식에 재즈음악이 낮게 깔리는 고급 와인바들도 앞으로 시련과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제자리를 찾고 더욱 친근한 형태로 다가올 것이다.

서양 음료문화를 대표하는 커피와 와인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기호음료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천사처럼 순수하고 키스처럼 달콤하다. 영혼을 맑게 하는 향기이며,지성을 일깨우는 음료'가 커피다. 또한 와인은 '잔 속에 든 한 구절의 시'이자 '물 속에 갇힌 햇빛'으로 묘사되는 음료다. 그러나 두 가지는 몇 가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극명하게 대비되는 점이 많아 이채롭다.

우선 맛과 향을 평가하는 방법과 표현법이 매우 유사하다. 조금 마시면 건강에 이롭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해가 되는 점도 같다. 치아 변색을 가져오는 대표적인 음료라는 좋지 않은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상반되는 점도 많다. 커피와 와인은 마신 뒤 효과가 크게 다르다. 한 잔의 뜨거운 커피는 풀어진 정신을 냉철하고 차분하게 만든다. 반면 차가운 와인을 마시면 정신이 혼미해지며 몸과 마음은 훈훈해진다. 따라서 저녁식사 후에 디저트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감성적인 성격을 가진 반면 커피를 주문하면 이성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생산 지역으로 보면 커피는 중 · 후진국 작물인 데 비해 와인은 선진국형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포도나무는 낙엽활엽 관목으로 남 · 북반구 위도 30~50도 사이 온대지역에서 주로 자란다. 반면에 커피나무는 남 · 북회귀선(위도 23.5도) 중간지역에서 많이 경작되는 사철 푸른 상록관목이다. 주된 커피 생산지는 아열대의 브라질 과테말라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비롯 에티오피아 케냐 같은 열대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와인의 주요 생산지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 국가와 미국 호주 등 대체로 생활환경이 좋은 나라들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와인은 커피에 비해 생산 · 유통에 관한 제도와 법령이 체계적으로 잘 정비됐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따로 있다. 커피와 와인은 역사적으로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발전해 왔다. 배경이 된 종교가 각각 기독교(와인)와 이슬람(커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와인은 로마의 기독교 전파 노력에 힘입어 유럽 국가는 물론 선교사들에 의해 신대륙에도 전해졌다. 커피는 대략 14세기께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됐다. 커피 열매를 따 먹은 염소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이슬람 신비주의자(Sufi)의 수장인 샤딜리는 커피나무를 예멘에 옮겨 심고 본격적으로 경작했다. 일설에 의하면 알라신이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모하메드에게 커피 씨앗과 함께 커피의 효능,끓이는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예멘에 정착한 커피는 밤 새도록 계속되는 종교의식 동안 이슬람 수도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의 정신 집중을 위한 각성음료뿐 아니라 약으로도 많이 쓰였다.

커피가 상업적으로 경작되고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한 시기는 15세기다. 커피의 경제적 가치를 알아차린 예멘은 커피나무가 아랍권에서 다른 곳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예멘은 16세기 후반까지 약 100년 동안 커피 공급을 독점하며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커피도 와인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꽃을 피웠다. 처음 커피를 유럽대륙에 소개한 사람은 중동과 교역을 많이 했던 베네치아 상인들이다. 그러나 커피가 유럽에서 인기를 모으자 약삭빠른 네덜란드 상인들이 예멘의 모카항에서 커피나무를 몰래 빼내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 곳곳에는 커피를 파는 카페가 생겨 많은 지식인들이 자유와 시민정신을 토론하는 장소가 됐다. 서구에서도 커피는 민주주의 정신을 확산시킨 매개체 역할을 했던 셈이다.



/와인칼럼니스트 · 여유공간 대표 sowhat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