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사모펀드… 기업 헐값 인수 '잰걸음'
금융위기로 잔뜩 움츠러들었던 사모펀드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때 '사망진단'까지 받았던 사모펀드들은 그동안 소리 없이 모아온 1조달러의 '실탄'을 갖고 최근 여기저기 사냥감을 찾아다니고 있다.

비즈니스위크 최신호(5월18일자)는 현재 일부 벌처펀드(파산 혹은 부실기업을 헐값에 인수해 상황이 호전된 후 고가로 되팔아 차익을 내는 사모펀드)가 부실은행 주변을 맴도는 것만 부각되고 있지만 일반 사모펀드들도 각 분야에서 크고 작은 인수 · 합병(M&A) 기회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스웨덴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후 기업가치를 높여 되파는 것) 펀드인 EQT파트너스는 지난 3월 미국 미시간주의 에너지회사인 미들랜드 코제너레이션 벤처를 인수한 데 이어 또 다른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 회사는 인프라와 에너지회사에 투자할 목적으로 15억달러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3억달러를 운용하는 신생 사모펀드인 캐털리스트 파트너스는 캘리포니아 소프트웨어회사인 마인드바디에 56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 회사는 현금이 부족한 정보기술(IT) 및 미디어 기업에 추가로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다. 미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지난 7일 벨기에 안호이저부시인베브로부터 오비맥주를 18억달러에 샀다.

30억달러의 자금을 굴리는 사모펀드 라이트이어 캐피털의 창업자 도널드 마론 회장은 지난해 초 어려움에 빠진 200여개의 금융회사에서 인력을 스카우트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진 지난해 여름 학자금 대출회사인 하이어원을 인수한 실적밖에 없지만 마론 회장은 "조만간 M&A 딜이 극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7년 바이아웃 붐이 끝난 후 최근까지는 사모펀드의 시련기였다. 특히 크라이슬러 트리뷴 리넨엔싱즈 등 사모펀드들이 인수한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사모펀드는 투자금만 날리고 기업을 운영하기보다 망가뜨리는 데 더 유능하다는 악명까지 얻었다. 그런데도 사모펀드로 돈은 계속 밀려들고 있다. 리서치회사인 프레킨에 따르면 사모펀드들은 현재 사상 최대 수준인 1조달러의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연기금 등 대형 기관투자가들로부터 5540억달러를 끌어모았다. 전년도의 기록적인 6250억달러와 비교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올해도 현재까지 490억달러를 새로 확보했다. 사모펀드로 자금이 유입되는 것은 지난해 사모펀드가 20%의 손실을 냈지만 이는 헤지펀드와 비슷한 수준이고,미 주식(-37%)이나 부동산(-38%) 원자재(-47%)보다는 성적이 낫기 때문이다. 금융리서치회사 그리니치 어소시에이츠에 따르면 미 기업연금들은 향후 5년간 자신들이 투자한 사모펀드의 수익률이 연 10.1%로,헤지펀드에 투자했을 때 기대수익률(연 7.8%)보다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금을 가득 쌓아둔 사모펀드들은 서서히 불황이 내려준 기회 탐색에 나서고 있다. 일부 대형 사모펀드는 자금난에 처한 기업들에 돈을 빌려주고 M&A 관련 자문을 해주면서 전통적인 투자은행처럼 활동하고 있다. 블랙스톤그룹의 경우 지난해 자신들의 전공인 바이아웃 분야 외에 다른 기업의 M&A와 구조조정 자문으로만 4억1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블랙스톤의 자문을 받은 고객은 AIG,포드자동차,우크라이나 정부 등 다양하다.

또 다른 사모펀드들은 헐값에 나온 매물을 잡기 위해 파산법정을 열심히 찾아다니거나 정부의 경기부양책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페이트리아크 파트너스의 창업자 린 틸턴은 지난달 20일 자금난을 겪는 화장품회사 스틸라 코스메틱스를 인수했다. 틸턴은 최근 즉석사진으로 유명한 폴라로이드 인수 경매에서 경쟁자들에게 패한 후 법원에 이의를 제기해놓고 있다. 틸톤은 "파산법원은 '사탕가게'와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돈을 벌 수 있는 달콤한 기회가 많다는 뜻이다.

다만 은행 대출이 여전히 풀리지 않으면서 과거와 같은 초대형 M&A보다는 소형 M&A 위주로 딜이 이뤄지고 있다. 또 복잡한 금융기법으로 이익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인수 기업을 되살리는 데 더 역점을 두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회계법인 언스트앤드영의 그레그 슬레이저 선임 파트너는 "사모펀드들이 M&A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 1조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경제 회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