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톱가수들이 다시 모였다. 안다성 명국환 쟈니리 체리보이 정원 김상진씨 등 1950~1970년대에 주로 활동했던 65세 이상의 가수 24명이다. 이상용씨 주도로 만들어진 '뽀빠이 유랑극단' 멤버로 전국을 돌며 무료공연을 하기 위해서다. 지난 4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가진 데뷔 무대엔 1300여명,6일 전남 함평 공연에는 1500여명의 '어르신 관객'이 찾아와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공연 요청이 쇄도해 이달에만도 동대문구,노원구, 용인,부산 공연이 잡혀 있다. 6월부터는 호주 미국 브라질 일본 베트남 등 해외 공연도 떠날 예정이다.

뽀빠이 유랑극단은 우리나라에선 흔치 않은 노인 공연단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노가수들에겐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노인들에겐 추억의 노래를 들려주는 '실버쇼'의 의미가 있다. 앞으로 문화혜택을 거의 못받는 오지를 우선 찾아가고 양로원 등에서도 공연하기로 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 노인인구는 이미 500만명을 넘어섰다. 2014년에는 전체 인구의 14% 이상이 노인인 고령사회에 들어선다고 한다. 그런데도 노인을 위한 공연이나 즐길거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노인들이 그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저 소외되고 방치돼 있을 뿐이다.

유랑극단 데뷔 공연도 젊은 가수 공연 못지않은 열기를 뿜어냈다. 가장 큰 호응을 받았던 가수는 극단 최고령자인 83세의 안다성씨.손수건을 꽂은 회색 정장 차림으로 '바닷가에서' '사랑이 메아리칠 때'를 부르자 주름이 깊게 패인 관객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에 빠져들었다. 노래가 끝나자 긴 박수가 이어졌다. 연미복에 검정 선글라스를 쓴 쟈니리가 무대를 누비며 '걱정마'를 열창하고 흰색 정장 차림의 체리보이가 골반을 튕기는 특유의 춤솜씨를 과시할 때는 노관객들이 무대앞에 나와 함께 어울렸다. 가수도,관객도 모두가 주인공인 무대였다.

노인들은 경륜과 능력이 있어도 일 할 곳이 턱없이 부족하고 즐길거리는 더욱 없는 상황이다. 어버이날 꽃 몇 송이 사들고 가서 일과성 위안잔치를 열어 주고 끝낼 일이 아니다. 뽀빠이 유랑극단 처럼 작지만 '노인이 주인공인 무대'를 지속적으로 마련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우리를 낳아서 키웠고 나라를 이끌어온 그들에게 사회가 보답할 차례이기 때문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