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금융위기를 우리는 '세계' 경제위기라고 하지 않고 '글로벌' 경제위기라고 부른다. '세계'라고 하면 시대사조에 어두운 촌놈이라고 욕을 먹는 것은 그래도 양반이고 심지어 '글로벌종교'의 교리에 맞서려는 국수주의의 혐의까지 받게 된다.

글로벌이란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그 중의 하나가 미국 기업인 IBM의 마케팅전략사업부에서 고안해 냈다는 설이다. 이에 따르면 IBM이 국제시장을 겨냥할 당시 아무래도 미국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걸림돌이 됐다. 유럽이나 아랍권에서 미국은 인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립적이고 몰가치적인 새로운 용어로 찾아낸 말이 지구촌이라는 뜻의 글로벌이었다고 한다.

용어로서 글로벌이 이 땅에 들어온 것은 외환위기를 전후해서다. 그것이 불과 10년만에 이렇게 거센 속도로 우리의 말과 사고를 틀지운 배경에는 '세계화'라는 종교가 있고,그 전도사가 토머스 프리드먼이며 그가 쓴 교리해설집이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이다.

이를 패러디하듯 《세계는 울퉁불퉁하다(World Is Uneven)》는 제목을 내세운 이 책은 미국이 헤게모니를 쥔 세계화에 대한 반론이다. 출발점은 한국 외환위기에 대한 반성이다.

IMF(국제통화기금)의 처방전대로 시장 개방과 고강도 구조조정,기업 매각을 통해 경제의 투명성과 금융체질을 튼튼히 했다고 자임했는데 11년 만에 다시 금융위기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고 있다.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가?

외환위기의 원인을 놓고는 진즉부터 몇가지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들추는 '나쁜 정책론'과 세계경제 구조의 모순이 위기를 불렀다는 '금융공황론'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금융공황론은 자취를 감추고 나쁜 정책론과 이를 배경으로 한 '내탓이오' 슬로건이 지배적인 담론으로 자리잡았다.

이 책의 주안점은 바로 이 담론의 정치학을 규명하는 것이고,이것을 통해 '국익을 지킬 수 있는 세계화'를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한때 경제의 기적이라는 칭송을 받던 한국의 경제모델은 미국 정부와 IMF에 의해 하루아침에 악의 근원으로 몰렸다. 거기에는 월스트리트와 다국적 기업의 이해관계가 깔려 있었지만,문제는 그들의 논리가 국내에서 '앵무새처럼' 여과없이 꾸준히 재생산돼 왔다는 사실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을 주도한 이들은 '미국유학파 출신의 전문가 집단과 386세력'이었다. 그들은 '게임의 규칙을 논하는 정치학보다는 규칙을 어떻게 하면 잘 따라갈까를 연구하는 경제학을 공부한' 이들이었다. 게임의 규칙은 미국이 정하는 것이고,미국이 겨냥한 것은 달러 헤게모니였는 데도 말이다. 프리드먼은 국경이 없는 세계화를 말했지만,국적이 없는 지식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잘못된 처방을 비난한다고 원인을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를 건너뛰고 지금의 위기를 논할 수 없는 만큼 금융공황 담론이 활발히 이뤄지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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