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부산시 강서구 송정동 녹산국가공단에 있는 철도차량차체 제조기업인 동성중공업㈜.이 회사의 제1,2 공장 주차장에는 임직원들의 승용차가 인근 도로 갓길로 치워지고,철도차량 차체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스테인리스 스틸이 빼곡히 쌓여 있다. 공장을 풀가동하다 보니 2700여평 1,2공장에 원자재를 둘 공간이 없어 몇 달째 주차장을 임시 창고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기업들이 글로벌 불황 여파로 정상적인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동성중공업은 납기를 맞추기 위해 직원 80명 외에 40여명의 사내 외주인력까지 가세한 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올해 창업 31주년을 맞는 동성중공업은 제2도약을 위한 전환점에 서 있다. 2007년 창업주인 김인식 회장(68)에 이어 경영권을 이어받은 김규동 대표(38)는 누구보다 이를 잘 인식하고 있다.

김 대표는 "고속철도 특수 등으로 글로벌 철도시장의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회사의 미래는 향후 몇 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환경은 현대로템의 협력업체인 동성중공업에도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젠 대기업에 좋은 품질의 철도차량 차체 부품만 납품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게 김 대표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동성중공업은 단순한 부품 납품에서 벗어나 완성차 수준의 차량을 만들기 위해 올해 10월 완공목표로 인근 화전공단에 4000평 규모의 제 3공장을 짓고 있다.

최근 들어 회사 매출액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2005년 140억원 규모였던 매출은 지난해 463억원으로 3배 이상 성장했다. 올해는 현재 주문액만 소화해도 500억원대를 가볍게 돌파할 것으로 추정된다.

동성중공업의 전신인 동성기업사는 1978년 설립됐다. 김 회장은 10여년 직장생활로 모은 7000만원을 자본금으로 지붕도 없는 150평 규모의 공장에서 컨테이너 부품 제조 등을 시작했다.

전남 보성 출신인 김 회장은 군 제대 후 20대 중반의 나이에 부산에 건너왔다. "철공소 직원에게는 얼굴도 안 보고 딸을 준다"는 말에 솔깃해 기술이라도 배워볼 요량에서였다. 친척 도움으로 철공소에 취직했지만,타지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월 100원씩 받던 월급으로 생활이 힘든 것은 둘째 치고,숙련공들이 모질게 매질을 가하면서도 기술은 한가지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아 몇 번이나 중도에 포기할 뻔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어 그는 기술자들이 퇴근한 밤이면 혼자 남아 낮에 어깨너머로 눈여겨본 기술을 독학으로 연마했다.

한 공장에 적을 두면서 밤에는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 '투잡스' 생활로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하루는 졸면서 철판을 공작기계에 밀어넣다 검지손가락 한토막이 잘려나가기도 했다. 일류 기술자로 대원강업(옛 대우버스)에 스카우트돼 공장장 자리까지 차고 앉았지만,월급쟁이보다 내 사업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 회사를 창업했다. 당시는 해외 교역량이 늘어 컨테이너 특수가 생겨났다. 이에 따라 컨테이너 제조분야로 사업을 특화했지만,자금이 부족하고 주문도 별로 없어 초기에는 절곡 절삭 등 '잔잔한 일감'을 도맡아 하던 종합철공소에 불과했다.

직원 20명으로 간신히 회사를 꾸려가던 그에게 1980년대 초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재계의 '신데렐라'로 불렸던 신선호 사장의 율산실업과 컨테이너 50대 납품 계약을 체결한 것.또 율산실업과 컨테이너 독점 납품 계약을 체결해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율산실업이 도산하면서 동성기업사도 하루아침에 종잇조각으로 변한 부도어음을 움켜쥔 채 같은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김 회장은 공장 문을 닫고 3개월가량 전국을 일주하며 울화병을 다스린 후에야 재기에 나섰다. 다행히 김 회장의 기술을 높이 평가한 지인들이 절단 절곡 등 일거리를 안겨줬다. 그는 틈틈이 일본 등 해외시장 동향을 파악해 앞으로 철도시장이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철도차량 차체의 제작분야로 사업을 집중했다.

"돈도 없고 백도 없다. 우리가 믿을 것은 품질 뿐"이라며 자신과 직원을 독려한 덕택에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다.

힘든 외환위기를 겪고 난 2001년 국내 철도차량시장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현대정공,대우중공업,한진중공업 등 철도차량 제조기업이 하나로 통합되는 '빅딜'이 성사된 것.수많은 협력업체가 구조조정의 태풍에 휘말렸지만,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동성기업사는 오히려 현대로템 등에서 더 많은 수주물량을 받아 납품하는 등 성장의 전기를 잡게 됐다.

이에 따라 현대로템의 우수 협력업체로 낙점받아 주문을 따내는 게 아니라 주문 납기를 맞추는 게 최대 고민이었을 정도였다. 지난해에는 현대로템 협력업체 중 품질 최우수 협력업체로 뽑히기도 했다. 동성중공업이 제작한 철도차량들은 현대로템 브랜드를 달고 현재 미국 남미 동남아 등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외 철도차량시장이 급변하고,원청업체인 현대로템의 글로벌 수출이 늘어나면서 동성중공업 등 중소 협력업체들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현대로템이 단순히 철도차량 부품이 아닌 조립공정을 거쳐 완성차 수준의 납품을 협력업체들에 요구하고 있는 데다 향후 글로벌 시장에 '노크'하기 위해서는 차량에 사용되는 전기제품 등 전장품 제조기술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동성중공업은 전장품 제조 등 기반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부산=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