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22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에 앞서 보낸 서면질의서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은 서면조사를 통해 그동안 제기된 의혹 및 사실관계 등에 대한 쟁점을 정리한 후 노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서면질의서를 먼저 발송한 이유는 조사시간 단축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는 게 검찰 설명이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여러 차례 소환할 경우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서울까지 경호 문제는 물론,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도 부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방대한 조사 분량을 서면질의를 통해 미리 줄이고,딱 하루 검찰에 출석했을 때 최대한 조사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면질의서는 A4용지 7페이지 분량으로 그동안 제기된 의혹이 폭넓게 기술된 것으로 알려졌다.

◆600만달러는 노 전 대통령 몫?

검찰이 노 전 대통령 몫으로 의심하는 불법성이 짙은 자금은 600만달러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작년 2월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500만달러를 전달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이 돈에 대해 상당한 지배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결국 이 돈이 노 전 대통령 몫이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박 회장은 또 2007년 6월 청와대에서 정 전 비서관에게 100만달러를 건넸다. 정 전 비서관은 이 돈을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했고 권 여사는 개인 빚을 갚기 위해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는 이 돈이 결국 건호씨의 유학비용 등으로 쓰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서면질의서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이 이 돈의 전달 과정에 개입했거나 최소한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을 질의서에 담은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 서면질의서에는 정대근 전 농협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회갑선물 명목으로 권 여사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3만달러와 관련,노 전 대통령에게 실제 전달됐는지와 사용처에 관한 질문도 포함됐을 것으로 보인다.

◆'3억원'에 대한 해명은 거짓?


검찰은 또 정 전 비서관이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3억원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질문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정 전 비서관은 2006년 8월 박 회장으로부터 3억원을 받은 뒤 이 돈을 권 여사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그러나 정 전 비서관에 대한 계좌추적을 통해 이 돈이 복잡한 자금세탁 과정을 거쳐 정 전 비서관의 차명계좌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노 전 대통령 측의 해명이 거짓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검찰 안팎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일단 최측근인 정 전 비서관의 구속을 막고 관련 혐의를 무력화하기 위해 거짓 진술을 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관련 혐의를 모두 권 여사에게 떠넘기면 노 전 대통령은 법적으로는 빠져나갈 수 있고 정 전 비서관 역시 단순 전달자에 그치면서 모두 '뇌물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이 구속되면서 이 같은 시나리오는 무너졌다.

검찰은 이 같은 정황을 감안해 노 전 대통령 측 해명의 허점을 파고들기 위해 3억원의 사용처를 밝히라고 요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결정적인 질문을 서면질의서에 포함하면 노 전 대통령 측이 대응책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소환조사 때 직접 묻기 위해 남겨뒀다고 전했다.

검찰은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대질신문 여부를 고심 중이며 서면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받아보고 소환 날짜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한편 정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2005년 1월 서울 S호텔에서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은 백화점 상품권 1억원어치를 분쇄기에 넣어 파쇄했다고 진술했다. 또 박 회장은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에게 회갑 선물로 개당 1억원짜리 명품 시계 2개를 건넸다"고 추가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