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간판주를 쓸어담으며 국내 증시를 주도하고 있다.

국내 주식형펀드로 자금이 빠져나가고 현금성 비중도 낮아진 기관의 매수 공백을 외국인이 메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간판주의 주가만 강세를 보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최근 유입되고 있는 외국계 자금은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한 성격이 짙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계 증권사들은 국내 증시 확대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기관 등 다른 투자주체들의 매수세가 받쳐주지 않아 업종별 순환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국내 증시는 앞으로 1350선 안팎의 박스권 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17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4830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전날 4799억원 순매수를 감안하면 이틀간 1조원 가까운 주식을 외국인 홀로 쓸어담은 것이다. 이 같은 외국인의 순매수 행보는 이날 3622억원가량의 프로그램 매물을 포함해 6402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정리한 기관의 행보와는 딴판이다.

특히 외국인은 이날 삼성전자를 정규장에서만 1202억원어치 사들인 것을 비롯해 현대차(621억원) 포스코(600억원) 대림산업(381억원) OCI(옛 동양제철화학 · 320억원) 신한지주(260억원) LG전자(196억원) 등 국내 대표 간판주만을 골라 담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이들 종목 가운데 신한지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1~4%가량 상승한 채 마감됐다. 또 유가증권시장에서 시가총액 100위까지의 대형주지수는 0.28% 하락에 그쳐 중형주지수(-2.13%)와 소형주지수(-2.26%)에 비해 선전했다. 시총 규모가 큰 종목들의 상승으로 코스피지수도 0.58% 하락으로 선방하며 1329.00으로 거래를 마쳤다. 반면 작은 종목이 몰려 있는 코스닥지수는 2.76%나 빠진 483.80으로 마감,500선에 안착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박상은 CLSA증권 이사는 "국내에서도 미니 유동성 랠리가 펼쳐진 것처럼 글로벌 금융위기 진앙지인 미국이 안정세를 보임에 따라 자금이 돌기 시작했다"며 "미국 등에서 그동안 낮췄던 국내 증시 비중을 높이기 위해 주문을 대규모로 넣고 있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다른 외국계 증권사 주문 담당 임원은 "최근 들어온 자금은 대부분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한 자금이 많다"며 "이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있고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도 시세가 급등하지 않는 국내 간판주를 살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외국인 매수세가 본격 시작된 지난 9일부터 이날까지 코스피지수가 1300대에서 움직이는 동안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3353억원어치 순매수했으며 포스코(2885억원) 현대차(1448억원) SK텔레콤(1327억원) LG디스플레이(1258억원) 현대중공업(1163억원) 등을 1000억원 이상씩 사들였다.

이에 따라 외국계 증권사들은 국내 증시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JP모건체이스는 이날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은 앞으로 39%가량 더 상승할 여력이 있다"며 한국과 중국 대만 태국 증시에 대해 '비중 확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 증권사 아드리안 모와트 홍콩 아시아 · 이머징마켓 수석 전략가는 "중국 미국 등의 잇단 금리 인하와 정부 재정지출 확대로 개발도상국 수출 수요가 살아나고 있어 곰(약세장)이 물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조너선 가너 모건스탠리 투자전략가와 템플턴의 마크 모비우스 등도 신흥국 증시가 지난해 폭락에서 벗어나 반등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특히 중국은 올 1분기 성장률이 6.1%로 1992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경기부양책 효과가 나타나면서 산업생산과 투자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외국인의 매수세가 이어지더라도 국내 기관들이 매수세를 받쳐주지 않으면 추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박건영 브레인투자자문 대표는 "소형주 · 중형주 · 대형주로 옮겨간 매수세의 주체가 개인,기관,외국인으로 모두 달랐다"며 "대형주로 옮겨간 매수세가 정보기술(IT) 조선 철강 자동차 등으로 순환매가 일어나야 추가 상승이 가능한데 지금 상황으론 기관의 순매수 전환을 기대하기 어려워 박스권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재후/박성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