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보다 휴가를 두 배 이상 가면서도 고용 불안을 느끼지 않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이 있겠습니까?"

이정호 반장(48)은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 반장은 회사에서 전기 도금 일을 맡고 있다. 하지만 퇴근 후에는 농사꾼으로 변신한다. 포항에서 40분 떨어진 흥해에서 농사일을 하며 건강과 부수입을 톡톡히 챙기고 있다.

포스코 계열의 철강제 포장 전문업체 삼정피앤에이가 그의 일터다. 2007년 9월 국내 철강업계 최초로 도입한 4조2교대제가 그의 생활 패턴을 180도 바꾸어놓았다.

휴가 없이 연속으로 일하는 3조3교대제하에서는 여가생활은 꿈도 못 꾸었다. 주간 근무조로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3시까지 8시간 근무한 뒤 집에 오면 피곤해 방에 드러눕기 바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4조2교대제하에서는 이전보다 무려 4배나 많은 휴가일수가 주어졌다. 2개조는 주야간을 나눠 하루 12시간씩 3일 연속 일하고 나머지 2개조는 3일 연속 쉬는 방식이다. 이 회사의 휴가일수는 190.5일.100여일 쉬는 포스코에 비하면 배나 길다.

이 반장은 1000평의 논에서 쌀농사를 지어 쌀을 해마다 15가마 정도 생산하고 있다. 인근 밭에는 보리와 고구마,상추 등도 심어 회사직원들과 나눠 먹는다. 이전에 고생하던 근골격계 질환도 말끔히 사라졌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부모 없는 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같은 부서 김영택씨(32)는 작년 경북도민체전에서 인라인 개인부문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처럼 삼정피앤에이 직원들은 모두가 한두 개 이상의 여가생활에 푹 빠져 있다. 회사는 컴퓨터와 수영 요가 등 사내에 17개 과정의 다양한 평생학습과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마련해 직원들의 여가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포스코에서 생산된 철강제품을 녹이 슬거나 표면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종이나 얇은 철판으로 감싼 뒤 다시 철제 밴드로 포장하는 것이 직원들의 주된 일거리였다. 그러나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돼 안전사고 우려가 높았다. 철강업계에선 대표적인 3D업종으로 꼽혔다.

이런 상황에서도 근로자들은 지난 30여년간 기술교육 한번 받을 기회가 없었다. 단순 반복 업무에 따른 피로도 누적으로 숙련도는 갈수록 저하돼 갔다. 그러나 4조2교대제 도입 이후 1인당 월평균 철강 포장량은 이전보다 17.7%나 늘어난 2532t에 달했다.

생산성이 몰라보게 개선된 데 대해 장춘식 경영지원그룹장은 "휴식시간이 늘어나면서 직원들이 어떻게 하면 더 쉽고 편하게 일할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고 이는 고스란히 아이디어 발굴과 공정 혁신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직원들이 자체 개발한 로봇결속기(Strap Master)가 대표적인 사례다. 직원들은 3일 연속 쉬는 휴가도 적극 활용해 로봇 구상에서 완성까지 순수 자체 기술로 로봇을 개발해냈다. 이 기계는 각종 철강 코일 제품을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에 앞서 흔들림이나 손상 방지를 위해 철제 밴드로 묶는 작업을 자동으로 수행한다. 종래 9명이 수작업으로 끙끙대며 매달리던 일이다. 장병기 사장은 "직원들이 지난 2년간 관련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 기술 교육을 받아가며 연구 · 개발에 매진한 값진 결과"라고 평가했다.

9년 연속 무교섭 타결을 이어가고 있는 노조는 최근 조합원 1인당 300여만원의 임금을 삭감한다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4조2교대제 전환 과정에서 근로일수 단축(연간 116일)에 따른 임금손실분을 수당 형식으로 지급받아오던 것도 당분간 안 받기로 했다. 초대 노조위원장 출신의 신엄현 노경협의회 의장은 "노조가 힘을 보태 위기를 극복하면 그 결실은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되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3735억원.철강 원료,포장 엔지니어링설비 등의 사업 다각화에 나선 지 1년여 만에 매출이 1162억원이나 불어났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