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온 손님을 접대할 때 가장 신경쓰이는 일 중 하나가 식당 예약이다. 특히 사업상 중요한 계약을 위해 방문한 경우라면 음식점을 고르는 일은 접대 포인트 1순위다.

대부분 쉽게 생각하는 곳이 특급호텔 레스토랑.하지만 이 정도라면 성의는 보여줬을지 모르겠지만 외국인들이 느끼는 감동의 측면에서는 아쉽게도 C학점짜리 답안에 불과하다. 뉴욕이나 파리 등지에서 질리도록 호텔 로비를 드나들었던 그들이 서울의 특급호텔을 방문했다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겠는가.

그나마 B학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맛과 분위기 좋기로 소문난 레스토랑들.청담동의 '팔레드고몽'처럼 규모가 큰 식당이나 이태원동의 '서승호',서래마을의 '라사브어' 같은 아담한 레스토랑들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A학점 답안은 누가 뭐래도 '한식'일 게다. 달팽이 요리는 파리에서,파스타는 밀라노에서 먹어야 하듯 한국에선 뭐니뭐니 해도 '한식'이 으뜸이다. 때마침 웰빙 문화가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들 역시 아시안 퀴진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한식당을 고를 때는 접대를 받는 외국인이 얼마나 한식과 친숙한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만약 중대한 계약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 손님과 첫 대면이라 서먹서먹하다면 이름이 잘 알려진 한식집을 택하는 게 무난하다. 삼청동의 '용수산',강남의 '한우리'나 '삼원가든'처럼 관록을 자랑하는 오랜 전통의 한식집이 무난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반면 한식에 좀 더 익숙한 외국인 바이어라면 색다른 곳으로 안내해 보자.푸드 스타일리스트 노영희씨가 운영하는 한남동의 '품'이나 전통 건조물 제1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옛 건물을 궁중 한식당으로 개조한 '필경재' 등이 대표적인 곳이다.

남산 올라가는 길에 위치한 '품'은 내용은 한식이되 담아내는 그릇은 무척이나 모던한,말 그대로 퓨전 한정식집이다. 처음 한국에 온 손님이더라도 익숙한 분위기에서 한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후식으로 나오는 유자 화채는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메뉴다. '필경재'는 99칸짜리 한옥이라는 공간 자체가 한국이 생소한 외국 손님들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맛 또한 최고 수준일 뿐 아니라 메뉴 역시 정통 궁중요리이기 때문에 처음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다음은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고 친분도 돈독한 외국 손님을 접대할 경우다. 허물없이 속내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효자동 '토속촌'의 삼계탕,서초동 '사리원'의 불고기,을지로 '우래옥'의 냉면 등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맛집으로 소문난 곳들을 데려가도 좋다.

하지만 아무리 친해졌다 해도 격식을 갖춰야 하는 상대라면 장충동 '전원'과 경기도 양평에 있는 '산당'을 추천할 만하다.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 맞은 편에 있는 '전원'은 정갈한 요리가 인상적이다. 영화 '라따뚜이'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요리 '라따뚜이'가 최고 요리이고,만화 '식객'에서 황제를 울렸던 맛이 다름 아닌 '육개장'이었듯이 '전원'에서 맛볼 수 있는 요리는 한결같이 한국인들에게 친근한 음식들이다. 집 반찬을 어머니 맘대로 정하듯 이 음식점에는 따로 차림표가 없다. 대신 문분선 사장이 제철에 맞춰 알아서 준비해 내줄 뿐이다. 물론 그 맛은 상상 이상이다.

경기도 양평 바탕골 예술극장 부근의 '산당'에선 요리연구가 임지호씨가 소개하는 다채로운 약초들을 만날 수 있다. '산당'이라는 이름이 소박할 것 같지만 어느 특급 레스토랑 못지 않은 데코레이션을 자랑한다.

번잡한 서울을 벗어나 한가로이 바람을 쐬면서 산당까지 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이곳까지 가면서 날씨와 자연 그리고 음식을 주제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다면 분명 사업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한식당을 고를 때 유용한 팁 하나. 유럽의 '미슐랭 가이드'나 미국의 '자갓 서베이'처럼 국내에도 객관적으로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서베이가 있다. 바로 '블루리본 서베이'(www.bluer.co.kr)다.

미슐랭 가이드가 별점을 주는 것처럼 등급에 따라 파란 리본을 부여하는 이 서베이에서 파란 리본 3개를 받은 식당들은 비단 외국인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한번쯤 꼭 가볼 만한 곳이다. 참고로 이 서베이는 대체로 맛뿐 아니라 시설 역시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다. 그 탓에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식당들 중에도 상당수가 리본 2개를 받는 데 그치고 있다.

김현태 월간 '데이즈드&컨퓨즈드' 수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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