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슬퍼하지 마라.

절망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니….'

우리나라 독자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 시의 작자 알렉산드르 푸슈킨(1799~1837)은 러시아 국가 브랜드 하면 즉각 떠오르는 시인이다. 19세기에도 그랬고 지난 20세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러시아 사람들의 푸슈킨에 대한 애정과 존경은 유별나다. 러시아 땅의 어디를 가도 우리는 푸슈킨의 흔적과 마주친다.


푸슈킨 동상과 푸슈킨 거리와 푸슈킨 박물관,푸슈킨 학교,푸슈킨 시(市),그리고 심지어 '푸슈킨표' 보드카와 초콜릿에 이르기까지.그리고 푸슈킨 이후 러시아 문학의 어떤 페이지를 열어 보아도 우리는 푸슈킨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에서부터 20세기 노벨상 수상 작가인 파스테르나크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대가들은 항상 푸슈킨을 계승하고 인용하고 되새기면서 자부심을 느꼈다. 한마디로 푸슈킨은 러시아 문학의 모든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에 태어나 40세를 못 넘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 시인의 어떤 점이 그를 아직까지도 한 나라의 문화 상징으로 만들어 주는 걸까. 푸슈킨이 지녔던 창조적 상상력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푸슈킨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이런 식의 의문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의심으로 바뀐다. 정말로 무엇 때문에 이 정도의 시인이 천재라 불리는 것일까. 처음 읽는 사람에게 푸슈킨의 작품은 시건 소설이건 드라마건 어느 것 하나 신선한 감동을 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시로 치면 푸슈킨보다 더 아름다운 시를 쓴 시인들이 많다. 양으로 따져도 다른 거물급 작가들에 비하면 푸슈킨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창의성 측면에서도 푸슈킨은 대단치 않게 보인다. 예를 들어 보자.그의 서정시들은 대부분 서유럽 낭만주의 시들을 토대로 쓴 것이다. 사랑,이별,죽음 등 낭만주의 시대 시인이라면 누구나 다루었던 주제를 가지고 푸슈킨도 썼다.

또 서사시만 하더라도 푸슈킨의 독자적인 작품이라기보다는 영국 시인 바이런의 모방작처럼 보인다. 그의 유명한 드라마 '보리스 고두노프' 또한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를 소위 '벤치마킹'해서 쓴 것이다. 요컨대 푸슈킨에게서 기발한 아이디어나 역발상이나 심오한 예술성 같은 것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 내기 어렵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푸슈킨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즉 기존에 존재하는 문학 작품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냈다는 데 있다. 푸슈킨의 주제와 형식과 내용은 모두 다른 나라 문학,옛날 문학,다른 작가의 문학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는 이 모든 '남의 것'들을 조금씩 뒤틀고 변형시키고 보완하여 '나의 것'으로 다시 만들어 냈다. 그의 천재성은 다름 아닌 모방을 재생산으로,그리고 재생산을 창조로 전변(轉變)시키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이 '다시 만들기'의 과정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독서와 습작이다. 푸슈킨은 독서광이었다. 그는 그리스 · 로마 고전에서부터 단테,셰익스피어,바이런,괴테,실러에 이르기까지 세계 문학의 거장들을 탐독했다. 그는 '새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있는 것'을 게걸스럽게 들이마신 것이다.

게다가 푸슈킨은 그 누구보다도 많이 원고를 고쳐 쓴 작가였다. 푸슈킨의 작품들은 모두 쉽고 단순하고 소박하다. 마치 영감에 가득 찬 작가가 순식간에 휘갈겨 쓴 것처럼 보일 때도 많다. 그러나 그의 유품을 정리했던 동료 작가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작품 치고 단숨에 씌어진 것은 단 한 편도 없다고 한다.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시행 하나도 수십 번에 걸쳐 다듬어졌다는 것이다. 천재 작가의 이미지 뒤편에는 독서와 습작으로 밤을 지새우는 노력가의 모습이 존재했던 것이다.

21세기는 창의성의 시대다. 많은 기업들이 지식보다는 창의성과 상상력을 갖춘 인재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창의성은 어디에서 습득할 것인가.

우리는 흔히 창의성 하면 무언가 엄청난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타고난 몇몇 천재들을 제외한다면 많은 경우 창의성은 '남의 것'을 속속들이 파악하여 그것을 '나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창의성은 하루아침에 맨땅에서 피어나는 꽃 같은 것이 아니다. 개인의 창의성도 그렇고 한 집단의 창의성도 그렇다.

우리의 일상 전체가,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이,새로운 창조를 위한 토양이다. 200년 전에 살았던 푸슈킨이 오늘의 누군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