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건넨 100만달러의 종착지가 노무현 전 대통령임을 확신하고 있다. 검찰이 9일 법원에 제출한 정 전 비서관의 영장 내용에는 '100만달러를 가방에 담아 정 전 비서관실에서 한번에 전달했다'는 박 회장의 진술을 토대로 돈이 건네진 장소 및 정황이 구체적으로 명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깃은 노 전 대통령

홍만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은 9일 브리핑에서 "(정 전 비서관의) 영장 내용에는 의미있는 것들이 많다"고 밝혔다. 노 전대통령이 지난 7일 사과문에서 "집에서(권양숙 여사가) 10억원을 빌렸다"고 해명한 것과는 상반되는 진술과 정황을 상당 부분 포착했다는 뜻이다. 홍 기획관은 권 여사가 이 돈을 받았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서도 "사과문이 발표되고 나서 처음 알았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돈을 받은 사람이 권 여사가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라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진술과 정황을 확보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는 또 "(이 돈에 대한) 차용증이 없고,박 회장은 빌려줬다는 식의 진술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혀 노 전 대통령이 받은 돈이 '빌린 돈'이 아니라 '먼저 요구해 받은 돈'이라고 돈의 성격을 규정했다.

검찰은 9일 새벽 박 회장으로부터 현금 3억원과 상품권 1억원,정대근 전 농협 회장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정 전 비서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돈을 받은 만큼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통령의 직무는 포괄적인 만큼 구체적인 대가성이 없어도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또 돈을 중간에서 전달한 정 전 비시관에 대해선 뇌물수수 공범으로 처벌할 방침이다.



◆추가 혐의 입증에도 주력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네진 불법 자금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우선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건넨 500만달러 역시 노 전 대통령이 먼저 요구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홍 기획관은 "500만달러(가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너간 가능성)에 대해 계속 보고 있다"는 말로 이를 뒷받침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박 회장의 홍콩 현지법인 APC의 계좌에서 연씨에게 송금된 500만달러 외에도 수상한 자금 흐름을 다수 포착,돈의 행방 파악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의 돈이 추가로 노 전 대통령이나 주변 인물들에게로 건너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홍 기획관은 "수사가 진행 중이라 언급이 조심스럽다"면서도 "APC 계좌 분석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꽤 의미있는 진전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와는 별도로 박 회장이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구속)과 정 전 비서관에 각각 건넨 상품권 1억원 외에 나머지 1억원어치 상품권의 행방을 쫓고 있다. 검찰은 박 회장이 2004년 12월 부산 모 백화점에서 50만원짜리 상품권 600장(3억원)을 구입한 뒤,같은 달 중순 서울 모 호텔에서 박 전 수석 · 정 전 비서관과 부부동반 모임을 갖고 자신의 사돈인 김정복 당시 중부지방국세청장의 인사청탁을 하면서 상품권 200장씩을 준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나머지 200장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한편 대전지법은 이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벌여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강 회장이 ㈜봉화에 투자한 70억원의 성격을 집중 조사해 이 돈이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지원하기 위해 건네진 돈인지도 밝힐 계획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