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씨(63)가 시집 2권을 발표한 시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그가 소설가이자 논객으로 치르는 유명세에 비해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그가 이번에 출간한 《서정적 풍경,보나르 풍의 그림에 담긴》(북마크)에는 '시인 복거일'이 쌓아온 내공이 드러난다. 영미권 시인 월트 휘트먼부터 서정주,박목월,정현종 등 우리 시인의 서정시를 다양하게 인용하며 말을 풀어내는 수필 30편이 실려 있다. '느슨하고 가볍고 한눈을 파는' 수필과 '팽팽하고 심각하고 엄격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의 대조와 조화에 관심을 두었다는 복씨는 "시를 가까이 하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어제 밤 너와 나와의/ 아쉽던 가슴 위엔/ 저기 저 감꽃이/ 수꾸기 소리 따라 피어났는가?'(이철균 <감꽃> 중)라고 낭송하면 거기 담긴 사랑의 애틋함으로 가슴에 파아란 물살이 인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옆에서 보기엔 심상한 사랑도 당사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애틋하다"는 그의 생각이 인용된 시로 뒷받침되며 설득력을 얻는다.

복씨는 또 "무엇을 탓하면서 빈둥거리거나 하잘것 없는 일들로 보낸 날들이 우리 속을 그리도 쓰리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가는 세월이 너무 아쉬워지면,그래서 흐르는 세월에 말을 거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시간의 모든 흔적을/ 그림자를/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정현종 <견딜 수 없네> 중)

직업인의 고되지만 보람있는 삶을 '순경은 구두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산다;화물차 운전수는 장갑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산다;그들은 그들의 발과 손을 간수한다;그들은 그들의 발과 손으로 먹고 산다'라고 노래한 미국 시인 칼 샌드버그의 <동 트기 전에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의 찬가>를 불황과 연결짓기도 한다. 복씨는 아무도 높이 여기지 않는 직업에서도 예술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직업의식을 지닌 사람에겐 어떤 직업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삽화는 복씨의 딸인 조이스 진이 맡았다. 복씨가 2007년 발표한 장편소설 《그라운드 제로》의 삽화 또한 조이스 진의 작품이었으니 이번 책은 두번째 부녀 작업인 셈이다. 딸이 그려온 유화에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의 분위기가 어렸다 해서 책 제목에도 '보나르 풍의 그림에 담긴'이라는 말이 들어갔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