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기업 경영과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 기업이 신사업에 뛰어들 때 먼저 큰 틀의 전략을 짠 뒤 세부 과제를 이행해 나가는 것처럼 그림도 구상과 스케치를 마친 뒤에야 색을 입히거든요. 캔버스에서 한발 떨어져 큰 그림을 본 뒤 하나씩 수정해 나가는 것도 비슷하고….저의 모든 걸 쏟아부을 대상이 그림에서 피죤으로 바뀐 것만 달라진 셈이죠."

이주연 피죤 부회장은 재계에서 보기 드문 '미술인' 출신 경영자다. 서강대 영문학과를 거쳐 미국 메릴랜드대와 퀸스칼리지 대학원에서 드로잉과 설치예술을 공부했고,수차례 개인전도 열었다. 이제 아버지를 도와 피죤을 대표하는 경영자가 됐지만 아직도 틈틈이 이화여대 강단에 설 정도로 미술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 그가 피죤에 합류하게 된 것은 비단 아버지의 '구애'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술과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얻은 상상력과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주부로서 그가 생각하는 '편리한 생활용품'에 관한 아이디어를 경영에 접목시키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실제 이 부회장은 지난 13년간 피죤에 몸담으며 제품 디자인을 개선했을 뿐 아니라 유아 전문 화장품 '보쥴'과 국내 최초 액체 세제인 '액츠' 출시를 주도하는 등 경영에서도 수완을 발휘했다.

부친 이윤재 회장은 "세상의 이치는 서로 통하기 때문에 한 분야에 정통하면 다른 분야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며 "딸을 보면 미술과 경영이 그다지 동떨어진 분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부라는 점은 생활용품업체 대표로서 이 부회장이 갖는 가장 큰 자산 가운데 하나다. 다양한 제품을 매일같이 직접 사용하기 때문이다. 주부이다보니 친구 집에 초대받거나 휴가를 가서도 주방과 화장실을 제일 먼저 찾는다. 따지고 보면 쉴 때도 피죤 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듣고 개선 방안을 찾는 '모니터링 요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연매출 2700억원(계열사 포함) 규모의 중견기업을 이끄는 여성 경영자의 기업관은 명쾌했다.

"단순히 수익을 많이 내는 회사가 좋은 기업은 아니겠죠.좋은 기업이란 타이틀은 사회를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대가로 적절한 수익을 창출하는 회사에 돌아가야 합니다. 피죤은 이런 점에서 좋은 기업이라고 자부합니다. 피죤 제품이 더 많이 팔릴수록 우리네 삶이 보다 편리해질 뿐 아니라 자연도 건강을 되찾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