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이 다소 나빠지더라도 마케팅비를 늘려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 ' vs '비용을 줄이고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게 불경기 경영의 정석이다. '

글로벌 불황으로 인해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의 머리 속이 한층 복잡해졌다. 순간적인 의사결정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게 돼서다. '공격적으로 갈 것이냐,수비적으로 임할 것이냐'가 대표적인 고민거리다.

'공격이냐,수비냐'의 갈림길 중 어느 한쪽을 선택했다고 해도 양자택일의 딜레마는 끝나지 않는다. 공격을 택했을 경우 기존 고객층과 신규 고객층 중 누구를 목표로 할 것이냐를 정해야 한다. 전통 매체와 뉴미디어 중 어디를 활용할 것인지도 선택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계속되는 양자택일의 딜레마에서 CEO들의 고민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경영에는 '도식'이 없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모니터그룹은 지난달 내놓은 '동요의 시기,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에서 탈피해야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불경기를 맞아 딜레마에 빠진 기업들의 의사결정 패턴을 분석한 결과 대다수 경영자들이 A안과 B안 중 한 가지를 골라야 한다는 양자택일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이런 함정에서 벗어나면 타협안인 C안뿐 아니라 A안과 B안의 부작용을 없앤 새로운 최적안인 D안도 존재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모니터그룹은 설명했다.

모니터그룹은 '품질'과 '원가'라는 전통적인 양자택일의 딜레마를 극복한 1970년대 일본 기업들을 예로 들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기업조직 전반을 효율화하는 방법으로 품질도 높이고 원가도 줄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품질이 좋아지자 재고 손실이 줄었다. 중복 업무로 지출되는 인건비와 불량품 리콜 비용 등도 감소하면서 원가도 더 감소했다. 결국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셈이 됐다.

◆유연하게 생각하고 신속하게 행동하라

양자택일의 딜레마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선행돼야 하는 것은 세계 경제의 흐름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변화의 방향을 알아야 적절한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위기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서 비롯됐던 과거와 다르다. 금융부실과 이에 따른 시스템 붕괴라는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위기는 새로운 환경으로 가는 관문이 될 게 분명하다. 이 위기가 마무리되면 전략,관계,역량 등 모든 측면에서 기업은 종전과는 다른 것들을 요구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비하려면 경쟁자,소비자,협력업체 등과 관련된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불경기에는 경쟁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 보다 경쟁자들과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유리하다. 글로벌 1~2위 이동통신사인 영국 보다폰과 스페인 텔레포니카가 통신망 경쟁을 멈추고 기지국과 네트워크 설비를 공유하기로 합의한 것이 경쟁에 대한 인식을 바꾼 대표적인 예다.

고객이나 부품업체들의 역할도 넓게 봐야 한다. 소비자들은 활용하기에 따라 품질 향상을 도와주는 멘토가 될 수도 있다. 기업이 생각해 내지 못한 혁신이 부품업체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신속한 행동도 필요하다. 각각의 대안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해 보고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
◆사회질서의 변화트렌드를 인지하라

기업들은 경제위기가 끝난 뒤에도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다. 미래의 모습이 어떨지 예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몇 가지 트렌드는 예측할 수 있다.

시장의 관점에서는 탈(脫)서구화가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이 아닌 제3국 시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다양한 지역 동맹들이 등장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기후 변화와 관련,지속가능 성장에 대한 요구가 한층 거세질 게 분명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환경문제와 관련된 규제와 시민 사회의 압박이 지속적으로 커진다고 가정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시민단체의 경계도 갈수록 모호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익 또는 사회적 가치를 대변하는 역할이 정부와 시민단체뿐 아니라 기업에도 부여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시기가 되면 '사회적 책임'이 기업 성공의 조건 중 하나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기술과 관련해서는 유비쿼터스라는 이름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인터넷이 개별 산업에 침투하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닷컴 버블이 꺼졌다고는 하지만 인터넷의 가능성은 아직도 무한하다. 가상현실 산업이 발달하고 인터넷을 통한 다른 업종 간 협력도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기존 사업의 규칙이 파괴되고 새로운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