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세계 통화'를 기획한 것은 히틀러였다. 전쟁에는 언제나 그럴 듯한 명분이 필요한 것이고 그의 재무상이었던 푼크 박사는 세계 경제의 균형을 목표로 내건 '신질서'라는 이름의 담대한 계획을 세웠었다. 이 '신질서'를 재빠르게 베낀 것이 영국 재무부였고 이 베끼기 프로젝트의 용역을 받은 사람은 케인스였다. 미국은 뒤늦게 재무부 고문 해리 덱스터 화이트를 내세워 따로 전후 구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의 전개 상황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브레턴 우즈 체제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케인스와 화이트의 논쟁,다시 말해 영국과 미국의 논쟁은 세계 금융을 조율하는 기구를 청산 동맹(Clearing Union)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안정화 기금(Fund)으로 할 것인가 하는 주제에 집중되었지만 결국 미국의 주장이 관철되었다. 이 안정화 기금이 오늘날 우리가 국제통화기금(IMF)이라고 부르는 기구다. 골목길에서는 주먹이 말을 하는 것이고 시장에서는 돈이 말을 하는 법이다.

1960년대 국제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SDR라고 불리는 세계 통화를 만들자는 주장이 유럽 측에서 다시 제기되었다. 미국의 재정 적자를 우려하던 세계는 IMF를 명실상부한 세계 은행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이번에는 미국과 프랑스가 전쟁에 돌입했다.

"미국이 세계 통화 창설에 반대한다면 결국은 금 본위제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며 국제 시장에서 금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의 드골이었다. 미국은 결국 1971년 8월 달러화의 금 태환을 중지한다는 폭탄 선언을 했고 세계를 석유 위기의 폭풍우 속으로 몰아넣었다. 석유와 금 가격의 상승,다시 말해 물가 폭등은 화폐의 타락 현상일 뿐이지만 이는 노동자 계급이 정치의 전면에 부상한 현대 대중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거의 필연적이다. 하이에크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중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나 비판은 지금까지 금기로 치부되어 왔다. 경제 원칙들이 부패해 가는 것을 변수 아닌 상수로 볼 수밖에 없는 시대로 접어든 것은 1,2차 대전을 거치면서였지만 개입주의 이데올로기는 그렇게 보편화되었다. 정치인들이 케인스를 좋아하는 것도 중앙은행의 돈을 정부가 마음대로 끌어다 쓸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이렇게 기축 통화를 운영하는 나라가 동시에 거대한 재정 적자를 생산하는 세계적 모순은 합리화되었다. 이 같은 모순을 우리는 '트리핀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세계적 유동성 공급은 환영할 일이지만 동시에 달러화 가치는 끊임없이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 골자다. 지금 중국이 불을 때고 유럽이 기름을 끼얹고 있는 세계 통화 논쟁이라는 것도 이 트리핀의 딜레마적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제 모순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할 정도로 심화되었다. 지금 돈을 쏟아내고 있는 미국이 다른 나라에 대해 돈을 풀라고 요구하는 것도 실은 달러화 가치를 지키려는 발버둥일 뿐이다. 1971년 이후 이미 유로화가 창설되었고 한때 쿠폰에 불과하던 위안화도 지금 동남아 뒷골목에서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러나 중국은 덩치는 크지만 아직은 미국의 유동성 공급에 의존하는 한낱 개도국이다. 유럽 역시 대미 수출에 의존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직은 미국을 대체할 세계 통화의 딜러(dealer)가 없다. 달러화의 운명은 정해졌지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문제는 한국이다. 고환율이 싫다며 강만수 장관을 내친 국민 정서법의 나라다. 그것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달러화가 폭락할 때 진짜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이다. 이 위기는 은행 BIS비율 따위의 장부상 위기가 아니라 산업 전체가 함몰하는 위기일 수도 있다. 이 점이 작금의 통화 전쟁을 보면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이유다. 낼 모레 G20은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