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은행만의 책임일 수는 없다. 이라크 전쟁 비용,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무역적자와 변동성 큰 에너지 시장 등이 작용한 결과다. "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7일 백악관 이스트윙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15개 금융사 CEO 간담회에서 월가에 대한 반감을 의식,이같이 말했다.

그는 연방정부의 금융위기 해소책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밝힌 금융 규제 강화책이 반드시 옳다고만 볼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오바마 대통령과 금융사 CEO들 간 만남이 '불안한 휴전(uneasy truce)'으로 끝났다고 보도했다.

보너스 중과세 등 민주당이 추진하는 각종 규제에 대한 월가의 반발을 무마하고 금융위기 극복 협조를 당부하기 위해 마련된 이 자리에서 몇몇 CEO들은 구제금융 자금을 연말까지 상환할 수 있을 정도로 재무구조가 우량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감독당국에서 은행들의 건전성을 따져본 뒤,이를 허용할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들이 구제금융에 따른 정부 간섭을 피하기 위해 곳간을 비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오바마 대통령은 보통의 미국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의식해 금융사의 연봉 및 지출 관행을 자제해주도록 거듭 당부했지만,CEO들은 행정부가 월가에 대한 반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해줄 것을 오히려 요청했다. AIG 보너스 지급 문제를 계기로 정부가 월가 때리기에 앞장서 국민적 분노를 자아낸 데 대한 섭섭함을 피력한 것이다.

케네스 루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CEO가 간담회를 마친 뒤 "금융사들은 분명히 실수를 했고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과거보다는 현재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말한 것도 월가의 불만을 반영한 발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백악관과 월가 간 긴장에도 불구하고 월가 CEO들은 연방정부의 금융사 부실자산 구제 계획에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경제 전망과 관련해서는 루이스 BOA CEO와 릭 워델 노던트러스트 CEO 등이 경기가 바닥에 근접했다면서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CEO는 "정부가 추진하는 경기부양책이 다른 서방국가들과 호흡을 맞춰야 효과를 볼 수 있는데,유럽 각국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는 격의 없는 자리였지만 한때 냉랭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다이먼 CEO는 가이트너 장관에게 정부의 구제 자금 250억달러를 체크(수표)로 갚겠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고,캠던 파인 인디펜던트커뮤니티뱅커스 회장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인형을 주면서 "스트레스가 생기면 인형을 누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한편 블랭크페인,루이스 CEO 등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글래스-스티걸법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는 어렵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