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구름, 흐드러진 꽃잎, 휘파람…피난길 소달구지가 어찌 이리 행복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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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화가 이중섭 화백(1916~1956)은 한국인에게 각별한 대상이었던 소의 특성을 선하면서도 우직하게 묘사해 국민적 추앙을 받고 있다.
하지만 6 · 25전쟁을 피해 잠시 머물렀던 서귀포 피난 시절을 경계로 민족적인 주제 의식에서 점차 자전적인 내용으로 전이돼가는 변화를 보인다. 그동안 소를 중심으로 한 향토적,서정적 주제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게와 물고기,그리고 가족을 다룬 내용의 자전적 요소가 한층 두드러지게 표상된다.
그의 자전적인 화풍이 드러나는 작품 중에는 '길 떠나는 가족'이 있다. 그는 생전에 '길 떠나는 가족'이란 제목으로 유화 두 점과 수채화 한 점을 그렸다. 같은 소재를 세 번이나 그렸다는 것은 작가가 그만큼 애착을 지녔다는 것이기도 하다.
수채화 작품의 화면 밑부분에는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말이 적혀 있다. "아빠가 엄마,태성이,태현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아빠가 앞에서 황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향해가는 그림을 그렸다. 소달구지 위는 구름이다. "
그러니까 이 작품은 이 화백 일가가 제주로 이주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1951년 1 · 4 후퇴 때 원산을 떠나 부산에 도착한 이 화백 일가는 바로 따뜻한 남쪽 지방인 제주를 향하게 되는데 이 화백과 제주와의 관계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화백 일가는 제주 서귀포의 어느 농가의 방 하나를 빌려 약 1년간 체류하고 다시 부산으로 나오게 된다.
당시 머물렀던 집이 현재 고스란히 복원됐으며 그 생가 뒤로 2002년 이중섭미술관이 세워졌다. 또 앞쪽으로 쭉 뻗은 길은 '이중섭 거리'로 명명됐다.
서귀포에서 다시 부산으로 나오면서 곧바로 부인과 두 아이를 친정인 일본으로 보내게 된다. 이 화백과 그 가족의 별리는 이후 재회에 대한 강렬한 열망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한 정신적 긴핍이 종내는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가게 되었다.
따라서 '길 떠나는 가족'은 가족과의 행복한 재회를 열망한 작가의 자전적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소달구지엔 여인과 두 아이,앞에서 소를 모는 남정네가 수평적인 구도로 묘출돼 있다.
여인과 두 아이는 꽃을 뿌리는가 하면 비둘기를 날려 보내고 있다. 소의 등에는 화사한 꽃다발이 얹혀 있다. 소를 모는 흰 옷의 남정네는 작가 자신이고, 소달구지의 여인과 두 아이는 부인과 두 아들임이 분명하다. 길 떠나는 가족은 당시의 상황으로 미뤄본다면 피난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도 신산한 피난길의 고된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신나는 야외 나들이라도 가는 인상이다. 가족을 이끌고 따뜻한 남쪽나라로 향해가는 남정네의 하늘을 향해 한 손을 든 모습은 가장으로서 새로운 땅(유토피아)을 찾아가는 뿌듯한 기분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남정네의 고개를 젖힌 모습은 휘파람이라도 부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 작품은 가족과의 재회를 꿈꾸는 작가의 희망찬 염원을 고스란히 표상하고 있다. 또 제주시대를 경계로 이후 작고하기까지 많이 그린 가족도와 어린아이를 모티브로 한 작품의 서곡을 알리는 것이자 이 화백이 꿈꾸었던 유토피아로서 따뜻한 남쪽나라의 이미지가 아로새겨져 있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이 화백이 전 생애를 통해 꾸준히 그린 황소가 등장하고,가족이 등장하는 내용은 이 작품이 유일하지 않나 생각된다. 누런 황소와 흰 바지저고리를 입은 작가,흰 저고리에 옥색치마를 입은 부인,발가벗은 두 아이의 건강한 모습,그리고 하늘에 길게 서리어 있는 붉은 구름은 화면 전체에 화사한 조화를 이끌어낸다. 희망에 부푼 인물들의 흥겨운 모습에서 순수무구한 예술가 이중섭의 내면이 꾸밈없이 표상되고 있는 느낌이다.
제주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의 상설전에서는 이 화백이 6 · 25 피난시절 서귀포에 머무르며 그린 1951년 작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비롯해 '아이들',일본으로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은지화'게와 가족'등을 만날 수 있다.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 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