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과 27일 양일간 이탈리아 의회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간 의회 예산기관장 회의가 열렸다. 최초의 의회 예산관련 기관장 모임이었던 이번 회의를 계기로 나라살림의 효율적이고 건전한 운용을 위한 의회의 역할에 대해 새로이 인식이 커지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의회가 국가 재정운용에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의회를 지원하는 재정전문기관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데 회의 참가국들이 인식을 함께했다. 전문적인 예산지원조직의 필요성이 강조된 것이다. 또 각국 정부의 경제위기 극복 조치에 대한 의회의 감시 기능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재정위험을 낮추는 대신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을 벌였다.

세계적인 예산전문가인 미국 메릴랜드대 알렌 쉬크 교수는"재정규모의 확대로 재정운용은 더욱 복잡해지고,재정운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에 재정을 전문적으로 연구 · 분석하는 재정전문 지원기구의 설립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회의 참가국 중 현재 의회 소속의 독립된 지원기구를 갖추고 있는 국가는 의회예산기구의 효시인 미국 의회예산처(CBO · 235명)를 비롯해 한국 국회예산정책처(NABO · 125명),캐나다 의회예산처(PBO · 13명),멕시코 중앙공공재정연구원(CEFP · 50명),스위스 의회재정감독처(SPFA · 16명) 등 다섯 나라이고 대부분의 국가는 의회 내 위원회에 전문 지원 인력을 갖추고 있다. 참가국들은 우리 국회예산정책처가 기관설립 5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세계가 주목하는 역할모델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된 배경과 성장 동력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번 회의에서는 먼저 바람직한 의회예산처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행정부의 정보독점에 대한 견제,재정운용의 투명성,책임성 강화,예산심의과정의 개선,정치적 중립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 경제전망에 있어 객관성,보수성,중도성이 중요하며 기준선 전망(baseline projections)은 전망이어야지 예측(predictions)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강조됐다.

세계 금융위기 극복과 관련된 사례도 소개됐다. 필요한 때에 알맞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책(캐나다)과 국가재정을 무원칙적으로 방만하게 운용하는,이른바 재정알코올중독현상(fiscal alcoholism)에 대한 재정규율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헝가리)이 주목을 받았다.

IBP(International Budget Partnership)의 워렌 크라프쉭 박사가 발표한 국가별 재정투명성 지표에 따르면,한국은 85개국 중 12위로 비교적 재정투명성이 높게 나타났는데 재정의 투명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행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제도개선,언론과 시민단체의 꾸준한 노력,의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미 의회예산처의 처장 대리직을 지낸 배리 앤더슨 OECD 예산국장은 의회예산기구가 당파성을 배제하는 정치적 중립성,자료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바탕으로 한 신뢰성,싱크탱크로서의 전문성,신속한 대응을 요구하는 적시성(適時性)의 원칙에 따라 실효성 있는 분석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OECD 국가의 의회예산전문가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이번 회의는 올해 설립 5주년을 맞은 우리 국회예산정책처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비록 미국의 의회예산처 같은 규모와 권한 등에 비교할 수는 없어도 짧은 기간 안에 나름대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도 받고는 있지만 정치적 중립성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또 각종 법안분석에 필요한 자료를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