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인류의 역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예술가와 시인의 뛰어난 직관력이나 철학자와 종교인의 내적 성찰에 의지해 왔다. 뇌과학의 중요성을 간파한 미국 정부가 1990년대 뇌의 시대를 선포하고 해마다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쏟아붓자 유럽과 일본에서도 뇌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뇌의 시대가 선포된 이후 10여년이 흐르고 최근 가시적인 성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TV와 신문의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다행히 지적이고 열정적인 저술가들에 의해 이런 연구 성과들이 교양과학서 형태로 출간되기도 했는데 워싱턴 의대 존 메디나 박사의 《브레인 룰스》는 좀 더 대중적이고 쉽게 쓰여졌으면서도 최신 연구 성과들을 충실히 담아 내고 있다.

이 책은 수많은 뇌과학적 연구 결과 속에서 우리의 삶에 큰 지혜가 되어 줄 '두뇌의 12가지 기본 법칙'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인지 기능을 개선하고 사고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주고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이해와 협력이야말로 뿌리 깊은 두뇌의 생존 전략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사람들마다 두뇌 회로가 모두 다르며 두뇌의 다양한 부위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발달한다는 두뇌 법칙은 너와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그래서 서로의 차이를 용인하는 배움이 중요함을 말해 주고 있다. 주의에 대한 두뇌 법칙에서는 좋은 발표자가 되기 위해 알아야 할 두뇌의 작동 방식과 멀티 태스킹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지적하고 있다.

충분한 수면이 정신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최근의 뇌과학 연구들이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가 잠자는 동안에도 두뇌 속의 뉴런은 끊임없이 활성화되어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된다.

가볍게 낮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운동 선수가 해 내지 못한 기술을 가능하게 한다. 수면이 가져다 주는 능력은 놀랍다. 군대나 경찰,교대 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처럼 불충분한 수면과 불규칙한 수면 패턴이 지속될 경우 주의력 저하,수행능력 및 인지기능 저하,기분 장애,운동능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저자는 수면이 생각과 학습의 촉진제라고 말한다.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뇌 부위와 감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부위는 해부학적으로 인접해 있다. 또 둘 사이에는 엄청난 신경망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기억과 학습에 있어 개인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되면 학습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저자는 인간의 뇌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 제대로 학습할 수 없게 된다는 두뇌 법칙을 통해 학교와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잘 다루는 것이 아이의 학습 능력과 직원들의 생산성 향상의 열쇠임을 역설하고 있다. 인간의 지각 능력에 대한 한계 실험은 인간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지각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또 인간의 감각은 서로 다른 감각과 상호 작용하고 이를 통합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중감각 정보를 이용해 인지습득 능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더 나은 마케팅 방식과 수업 방식,더 나은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놀랍고도 다양한 뇌과학적 연구 성과들을 유쾌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우리에게 직관을 벗어난 새로운 시각을 맛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진범수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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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찾아서 에릭 캔델 지음|전대호 옮김|랜덤하우스|560쪽|2만5000원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카블리 뇌과학연구소장인 저자가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후에 쓴 역작.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그는 히틀러 치하의 유대인으로서 굴욕적인 유년기를 보낸 경험 때문에 '기억'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 왔다. 그는 뉴런(신경계의 단위로 자극과 흥분 전달)들 간의 연결인 시냅스(뉴런의 축색돌기 말단과 다음 뉴런의 수상돌기 사이 연접부위)들을 통해 어떻게 다른 기억들이 신경회로 상에 저장되는지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인간의 핵심적 정신 과정 중 하나인 기억이 뇌세포의 생물학적 작용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