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출입이 금지된 지 4일째를 맞은 16일 도라산 남측 출입사무소.오전 7시부터 방북 신청자 명단에 올라 있는 200여명의 개성공단 기업인과 근로자들을 비롯해 20여대의 화물차량이 모여들었다. 오전 9시20분께 북측이 귀환만 허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방북 대기자들은 향후 대책 등을 논의하느라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개성공단기업협의회 소속 50여명의 기업인들도 이날 발표한 '통행정상화 촉구성명서'에서 "생산활동에 필요한 원부자재와 생필품 등 모든 자재의 공급이 차단됐고,공단 내 기업활동이 완전 마비되고 있다"며 "남북 당국은 재발 방지를 보장해 달라"고 강조했다.

특히 북측이 남측 근로자들의 귀환만 허용하고 방북을 금지함에 따라 기업인들은 자재 고갈,관리 공백 등으로 인해 개성공단 현지의 생산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당장 현지 공장을 관리감독하고 작업지시를 할 인원이 줄어들 경우 조업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유창근 개성공단기업협의회 부회장은 "이 상태라면 식자재,원자재 부족으로 대부분의 기업이 2~3일을 버티기가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더구나 오늘 상당수 관리직원들이 귀환할 경우 현지의 관리 공백 상황은 더 심해져 향후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재 개성공단 가동업체 중 10개 정도의 기업이 자재반입 중단과 직원공백으로 인해 이미 조업이 중단된 상태다.

일부 기업의 경우 책임자급 관리직원은 현지에 잔류하고 최소한의 실무진만 귀환한 실정이다. 출입사무소 측에 따르면 이날 개성공단에서 귀환할 예정 인원은 453명이었으나 159명이 자진 잔류키로 해 실제 귀환 인원은 294명이다. 차량은 152대가 남측으로 복귀했다.

오후 3시.출입사무소에 귀환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귀환자들은 사안의 민감성을 의식한 듯 언론과의 인터뷰를 가능한 한 피하려는 모습이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근로자는 "오늘도 귀환이 안 되면 사태가 장기화될 것 같아 걱정스러워 북측 관리 직원에게 슬쩍 물어보니 대답 대신 씩 웃길래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계설비업체인 공덕상사의 정준씨(49)는 "현대아산식당을 이용하는데 식당 관계자가 식자재 반입이 안 되니 식사량을 줄여달라고 부탁했다"며 "매주 1번씩 있었던 삼겹살 파티도 취소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또 "원청업체(태광산업)가 원자재 반입도 안 되고 남측 근로자들도 없어 내일부터는 공장 가동을 멈추니 북측에 근로자들을 출근시키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들었다"며 "사태가 장기화된 만큼 내일부터는 공장 가동을 멈추는 현장이 더 속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복귀한 한 섬유업체 관계자도 "매일 자재를 받아 생산해야 하는 봉제공장들은 이미 공장 가동을 멈췄는지 불이 꺼진 곳들이 많다"고 전했다. 휴대폰 부품생산업체인 자화전자 관계자는 "오늘 귀환하는 다른 회사 직원을 통해 물품 반입을 요청해 겨우 30만대 분량의 반제품을 받았다"며 "원래 오늘 50만대 분량을 받아야하지만 우선 급한 불이라도 끄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파주(도라산)=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