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 '늦깎이'로 들어온 배우 추자현 (30)은 그동안 '선 굵은 배역'에 주로 도전했다. 첫 영화 '사생결단'(2006)에서 남자들에게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는 마약 중독자 역으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받았고 '미인도'(2008)에서는 뭇 사내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음탕한 기녀 역으로 시선을 모았다.

오는 19일 개봉되는 스릴러 '실종'에서 추자현은 연락이 끊긴 여동생을 찾아 나서 연쇄 살인범(문성근)과 맞대결하는 강단 있는 여성 역을 해 냈다.

1996년 연예계에 데뷔한 후 방송드라마 '카이스트'에서 털털한 성격의 선머슴 같은 매력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여배우들이 꺼려하는 역할을 거침 없이 해 냈다. 서울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추자현을 만났다.

"'실종'은 '강호순'의 연쇄 살인을 떠올리게 할 만큼 사회적 이슈와 민감하게 맞물려 있어요. 2년여 전에 기획돼 치밀하게 준비한 덕에 현실성이 높아요. 그렇지만 저예산으로 촬영하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

이 영화는 '손톱'(1994) '올가미'(1997) 등을 통해 한국 스릴러의 개척자로 꼽히는 김성홍 감독이 '세이 예스'(2001) 이후 7년 반 만에 연출한 작품.돈 가뭄으로 인해 배우들의 출연료를 투자로 돌려 순제작비 8억원으로 지난해 8월부터 한 달 반 만에 촬영을 마쳤다. 예산 문제로 반복 촬영 횟수를 줄여야 했던 만큼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범인과의 혈투 신도 찍어야 했다.

"연쇄 살인범과의 대결 장면을 촬영할 땐 오른쪽 어깨에 멍이 시퍼렇게 들었어요. 살인범에게 얻어맞아 철재 벽에 심하게 부딪쳤거든요. 스태프가 안전을 위해 포대 벽을 세웠지만 제가 치우라고 했어요. 화면에 티가 나니까요. 처음에는 살인범의 얼굴과 가슴을 담은 '바스트 샷'만 보여주려 했던 것을 제가 매 맞는 모습까지 포함한 '풀 샷'으로 처리할 수 있었어요. "

추자현은 살인범 역의 문성근에게 주먹으로 맞아 뒹굴거나 쓰러질 때 실제 '쿵'하는 소리를 냈다고 한다. 놀란 스태프들이 달려왔지만 김 감독은 그의 몸 던진 연기를 내심 좋아하는 듯 보였다.

발길질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배에 보호대를 댔지만 문성근의 살벌한 눈빛에 겁 먹어 진짜 '리얼한' 리액션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한다.

"문성근씨와는 촬영장에서 서로 가급적 말을 아꼈어요. 동기 없이 살인하는 사이코 패스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계산되지 않은 리액션을 필요로 했거든요. "

추자현이 출연한 3편의 영화들은 모두 '청소년 관람불가'다. 그녀는 아마 남들이 꺼리는 도전적인 배역을 즐기는 성향 탓일 것이라고 했다.

"'미인도'에서도 신윤복 역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어요. '사생결단'에서는 벽에 머리를 찧고 야구 방망이로 다리를 맞는 연기로 '매 맞는 여배우'란 별명도 얻었고요. 어두운 캐릭터를 연기할 때의 '스트레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희열도 분명 느껴요. "

글=유재혁 기자/사진=김기현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