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2006년 5월 한 시중은행에서 6500만엔의 엔화 대출을 받았다. 대출금리는 연 1.38%였다. 6개월마다 금리가 변동하고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조건이었다.

당시 원 · 엔 환율(100엔당)이 832원이었기 때문에 원화로 환산한 원금은 5억3000만원이었고 한 달 이자는 65만원 정도였다.

대출을 받은 지 2년6개월 정도 지나자 상황이 돌변했다. 환율이 1600원대로 치솟아 원금이 두 배 가까운 10억원가량으로 불어났다.

게다가 은행이 조달금리가 올랐다는 이유로 대출금리를 4.5배로 올렸다. 이자를 엔화로 내야 하기 때문에 원화로 계산한 월 이자는 585만원으로 늘었다. A씨는 "환율이 오른 것은 그렇다 쳐도 대출금리마저 인상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엔화 대출금리 왜 올라갔나

환율 상승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엔화대출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금리다. 원 · 엔 환율이 두 배 가까이 뛰었다면 원화로 환산한 이자도 두 배 정도로 늘어나는 것이 정상인데,은행들이 갑자기 금리마저 올려 실제 이자 부담이 7~10배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엔화 대출은 통상 6개월 단위로 금리가 변동되도록 설계됐다. 은행들이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금리를 적게는 4%포인트,많게는 8%포인트까지 올리면서 엔화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급증했다.

엔화대출자모임(엔대모) 관계자는 "대부분의 엔화 대출자들은 환율이 언젠가는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만기 연장만 제대로 해주면 원금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자는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하는 돈이기 때문에 당장 사업을 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엔화 대출 피해자 공청회에서 시중은행이 밝힌 엔화 조달 평균금리는 약 3.9%로 금융위기 이전보다 2.5%포인트 상승한 정도였다"며 "하지만 엔화 대출자들에게는 조달금리 상승분보다 두세 배 많은 금리를 가산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신용대출과 담보대출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긴 오해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엔화 대출을 받을 당시 전액을 담보로 대출받았기 때문에 금리가 낮았지만 지금은 원화로 환산한 원금이 두 배로 뛰어 담보 설정액을 초과한 금액에 대해서는 신용대출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며 "신용대출 금리가 담보대출보다 높은 만큼 금리가 오르게 된다"고 전했다.

예컨대 13억원짜리 땅을 담보로 10억원(담보 설정비율 130%)을 빌린 경우 환율 상승으로 원금이 두 배(20억원)가 되면 담보가액(13억원)을 뺀 나머지 7억원에 대해서는 신용대출로 전환해 금리를 계산한다는 것이다. 이자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차는 환율 상승으로 발생한 담보부족분을 '신용대출'로 전환시키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인 셈이다.

◆자의인가 타의인가

엔화 대출을 받은 사람들과 은행이 싸우는 또 다른 쟁점은 '원화 대출자들에게 은행이 강권한 것 아니냐'는 점이다.

엔대모의 한 관계자는 "3년 전에 연 6%대의 금리로 원화 대출을 쓰고 있었는데 은행에서 이자가 싼 엔화 대출로 바꾸라고 제의했다"며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주거래은행에서 강하게 여러차례 권유하는 바람에 혹시 불이익이 있을까봐 어쩔 수 없이 바꿨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엔대모 관계자도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엔화 대출을 홍보하지 않았다면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상품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라며 분개했다.

이 관계자는 "가입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금리 인상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고 10년까지는 무조건 만기가 연장되는 것처럼 얘기했다"며 "이제 와서 각종 이유를 들이대며 만기 연장이 안 될 것 같다고 으름장을 놓다가 예 · 적금이나 방카슈랑스 등에 가입하면 연장을 해주겠다는 '꺾기' 권유를 할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물론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도 은행들의 애기는 완전히 다르다. 중소기업 사장들과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들 사이에 금리가 매우 낮고 환차익까지 챙길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너도나도 엔화 대출을 빌려다 썼다는 것.

시중은행 관계자는 "2~3년 전 원화 대출에 비해 5~6%포인트 정도 금리가 낮은 돈을 빌려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무분별하게 대출을 신청한 사람이 많았다"며 "지난해 3월께부터는 환율이 오를 수 있으니 원화 대출로 갈아타라고 권유했는데도 고객들이 귀담아 듣지 않아 화를 키웠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엔화로 빌려 아파트나 빌딩을 매입하는 등 투기 목적으로 사용한 사람들도 꽤 있다"고 주장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