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 바로 우리 농업을 두고 생긴 말인 것 같다. 1990년대 이후 130조원이 넘는 보조금을 쏟아부었지만 농업이 좋아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다른 산업에 그 정도 투자했으면 품질은 높아지고 가격은 낮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농산물의 품질은 제자리이고 가격은 끝 모르고 올라만 간다. 그럴 거면 농민들의 삶이라도 좋아져야 하는데,농가 부채는 해결은커녕 늘어만 간다.

이제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우리 농업이 낙후된 것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접목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농민은 생산만 하면 된다는 태도가 문제다. 팔리면 좋고 안 팔리면 정부 책임이 된다. 자급자족 농업 시대에나 맞는 이런 태도가 농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팔리지 않는 물건은 아무리 정성들여 만들었더라도 자원과 노력의 낭비에 불과하다.

농민들에게도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하다. 팔릴 것을 생산해야 하고 팔리지 않을 것이라면 알아서 생산을 접어야 한다. 농민들도 고객이 원하는 바를 찾아내어 감동을 줄 줄 알아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농업 보호정책들이 농민에게서 기업가적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를 앗아갔다.

뉴질랜드 농민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농업기업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1984년 충격적으로 단행한 보조금 및 보호조치 철폐 덕분이었다. 최소한 농민의 25%는 망할 거라던 걱정은 기우였다. 도산한 농민은 1% 미만.나머지 99%는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강해져 세계 어디에 내놔도 경쟁할 수 있는 당당한 농업기업가가 됐다. 보조금을 지불하던 당시 70여 종에 불과하던 낙농제품은 자유화 이후 2000종을 넘어설 정도로 창의성이 발휘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하나둘씩 농업기업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양평에서 콩 농사를 지어 전통방식대로 장을 담가서 파는 김영환 · 박애경 부부.12년 전 농촌으로 들어와서 고생 끝에 억대 농민 기업가가 됐다. 성공 비결은 끊임없이 고객들과 소통하고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한 것이다. 고객이 행복해 하면 자신도 행복하다고 박애경 대표는 말한다. 그래서 농장의 이름을 '가을향기농장'이라고 붙였다. 이제 그들의 된장은 한국을 넘어 유럽으로의 수출을 앞두고 있다.

충남 예산 가나안 농장의 이연원 대표.무항생제 돼지와 분뇨의 퇴비화로 승부를 걸고 있다. 머지않아 중국은 식량 수입국이 될 터인데 한국의 농민은 그 시장의 선점자가 될 수 있다고 기염을 토한다. 구제역으로 고생하던 2000년 어느날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 책을 읽다가 문득 지금까지 자신은 소비자 중심이 아니라 생산자 중심의 농업을 해왔음을 깨닫고 성공의 길로 들어선다.

'5℃ 이온 쌀'로 연매출 250억원을 이루어낸 ㈜PN 라이스의 나준순 대표.그의 목표는 더 크다. 일단은 쌀 판매로 연매출 1000억원짜리 기업을 만든 후 궁극적으로는 한국판 카길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농업을 즐거워하고 고객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이기에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이처럼 농업으로 비즈니스의 꽃을 피워낸 농민들을 보면서 우리 농업에도 얼마든지 희망이 있음을 본다.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농민이 아니라,농업기업가들이 더 많이 나오도록 장려하는 것을 농업정책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자급자족적 농업관에서 벗어나자.우리의 먹거리를 조달하는 역할은 농업이 가진 잠재력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농업은 먹거리뿐만 아니라 옷의 원료를 생산하고,꽃을 생산하며 즐거움을 생산할 수 있는 산업이다. 농업과 농지 관련 제도들의 대대적 수술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농업도 전자나 건설,조선에 못지않은 세계적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