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단체협약에는 신기술 도입 및 공장 이전,기업 양수 · 양도 때와 생산 · 연구 · 정비부분의 외주처리 및 하도급 등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을 수립할 때 노사공동위원회에서 심의 · 의결하도록 명시돼 있다.

전환배치도 노사공동위원회 몫이다. 해외 공장 인원투입 문제까지 노조가 관여한다. 회사가 고유권한인 경영권을 행사할 때에도 노조의 허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유럽,일본 등 선진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노사 불평등 협약'이 유독 한국의 노사현장에서만 판치고 있다. 이는 곧 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고용조건을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선 노조의 고비용구조를 깨는 게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단체협약은 '철밥통' 보증서

현대차의 단체협약에 명시된 노조원 과보호조항은 무수히 많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근무시간 중 조합활동보장,조합사무실 유지비의 회사부담 등 많은 조항에 걸쳐 회사는 노조에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현대차에는 일은 안하고 임금만 받는'무노동 유임금' 노조 간부가 650명에 달한다. 웬만한 대기업 규모와 맞먹는 인원이 노조활동과 관련된 일만 하는 것이다. 이 중 노조전임자는 90명이다.

조합교육위원,판매 · 정비지역 파견자,상급단체 임원 등 별도 인정 상근자도 127명이고 대의원도 447명에 달한다.

노조가 투쟁과 권력을 바탕으로 회사 측을 압박해 받아낸 성과물이다. 우리나라 전체 노조 전임자수는 1만여명으로 고비용 · 저효율의 전위대 역할을 한다. 이러다 보니 "한국의 사용자는 노조권력에 착취를 당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노조의 고비용구조는 결국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고용감소로 이어진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거품경제하에서 고비용구조로 단협을 체결한 기업이 많다"면서 "글로벌 경쟁시대에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노조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단협부터 손질해야 기업도 살아나고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업장의 단체협약이 근로기준법을 뛰어 넘는 수준으로 노조원을 과보호함에 따라 우리나라 고용유연성은 세계에서 가장 경직돼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각 나라별 고용법제를 분석한 결과,고용유연성은 한국이 OECD 가입국가 중 12위로 중간 수준이다.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은 해고가 어려워 고용경직성이 높은 나라로 분류됐다. 하지만 단체협약까지 포함시킬 경우 해고가 거의 불가능한 우리나라의 고용유연성은 맨 꼴찌로 떨어진다.


◆"민주노총 깃발 꽂히면 문 닫겠다"

노조 권력은 기업의 일할 맛을 뚝 떨어지게 만든다. 고용창출에도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우리회사 노조에 민주노총의 깃발이 꽂히는 순간 회사를 그만둘까 무척 망설였다"(코스닥 상장 E사 박모 대표)는 고백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현주소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박 대표는 "노동자의 권익을 찾겠다는 건지,회사를 말아먹겠다는 건지,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며 "경영진을 우습게 알며 떼쓰듯이 덤비는 게 노동운동이라면 회사 문을 닫아버리겠다"고 말했다.

우리 노동현장에는 권력을 과도하게 행사하려다 망한 기업들이 수없이 많다. 자동차부품과 공작기계,방위산업제품 등을 생산하는 창원 S&T중공업(옛 통일중공업)은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직원 5000여명이 근무하며 잘나가는 대기업이었다.

이 회사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은 강성노조가 생기면서부터.여느 사업장에서처럼 이 회사에도 1987년 민주화바람을 타고 노조가 들어섰지만 노동운동 행태는 다른 회사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마산 · 창원지역 노동운동을 주도한 노동운동가들이 이 회사 노조를 접수(?)하면서 불법파업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졌고 생산성은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말 그대로 회사가 엉망진창이 됐다. 파업중독증이 얼마나 강했으면 회사가 망해가는 와중에서도 투쟁가를 불렀을까. 결국 S&T중공업은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마자 부도가 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신세가 됐다.

2003년 삼영그룹으로 바뀐 뒤 매출이 늘어났지만 직원은 1000명이 조금 넘는 회사로 쪼그라들었다. 노조의 무분별한 권력이 결국 4000명의 일자리를 빼앗은 셈이다.

결국 잘못된 노동운동이 노조권력을 키우고,이것이 다시 고비용저효율을 초래해 일자리를 빼앗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구조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노조의 불합리한 의식과 제도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우리경제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며 "노조의 잘못된 권력구조를 개선해야 기업의 성장동력이 살아나고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