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동 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에 있는 반도체 부품회사 A전자의 최모 사장(53)은 "청년백수가 100만명이라는 뉴스를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A전자는 신입사원이 하루 8시간씩 주 5일 일하면 월급 110만원에 상여금으로 기본급의 400%를 더 얹어 준다. 4대 보험,연월차,초과근무수당,중식비 등도 보장되는 정규직 사원을 작년 봄부터 1년째 구했지만 선뜻 다니겠다는 젊은이가 없었다. '생산직'이라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결국 최 사장은 새터민(탈북자),외국인 등으로 그 자리를 채워야 했다.

초봉 2000만원도 생산직은 싫다

도대체 얼마나 근무환경이 열악하면 청년층이 그토록 입사를 꺼리는지 구로동 A전자를 직접 찾아가 봤다.

이 회사는 산업단지 안이기는 하지만 얼핏 봐선 공장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현대식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해 있다. 통유리로 마감한 이 건물은 완공된 지 2년 정도 됐는데 지하에는 피트니스 센터가,1층에는 패밀리 레스토랑과 외국계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와 있을 정도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서울 강남의 여느 대기업 사옥과 그리 차이가 없는 분위기다.

최 사장은 그러나 "팔팔한 20대 직원을 뽑고자 작년 봄부터 채용정보업체는 물론이고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취업정보 공유 카페까지 찾아가 공고를 띄웠지만 다들 '초봉 2000만원이라도 생산직은 싫다'고 하더라"며 "뭘 믿고 그렇게 콧대들이 높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런 구인난은 비단 A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건물의 전자업체들은 하나 같이 '대학 연구실'을 연상시킬 정도로 밝고 쾌적했지만 젊은 직원이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성남에서 꽤 유명한 B제과점 업체는 빵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월급 180만원에 일년에 네 번 보너스를 챙겨 주고 원룸형 기숙사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6개월간 이 회사에 들어온 젊은이 가운데 사흘을 넘겨 일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업체 김모 사장은 "빵 기술을 잘 배워두면 '파티셰'도 될 수 있고 성실한 직원이 분점을 내고 싶다고 하면 투자할 용의도 있는데…"라며 답답해했다.



◆"못 다니겠다"는 이유도 가지가지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실업자는 35만명이다. 사실상 실업자나 다름 없는 취업준비생(52만명)과 그냥 쉬는 사람(31만명)을 합하면 한창 나이의 젊은이 118만명이 놀고 있다. 그 나이대의 경제활동인구(443만명)를 모수로 하는 사실상의 실업률은 25%가 넘고 전체 청년층 인구(약 1000만명)로 따져보면 약 10%가 실업 상태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데도 기업들이 구인난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시내 고용지원센터와 한국고용정보원 등을 통해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사정을 들어보면 구인기업과 구직자 사이에 '눈높이의 미스매치(불일치)'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년층 신규 취업자는 중장년층 재취업자에 비해 구직을 할 때 이런저런 조건을 더 많이 따진다. 급여와 직종은 물론 회사 위치와 건물 외관,회사인지도 등 직접적인 근로 조건과 다소 거리가 있는 사항들을 따지는 경우가 많다. 서울 강남지역에 있는 회사를 더 선호한다든가,자생력을 갖춘 중견기업보다는 인력파견회사라 하더라도 대기업 협력사를 더 선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4년제 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오모씨(24 · 여)의 경우 고용지원센터에서 성남공단의 월급 200만원짜리 사무직 자리를 알선해줬으나 "100만원이라도 강남에 있는 회사로만 알아봐달라"며 거절해 상담원들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서부고용지원센터의 전문직업상담공무원 민희자씨는 "그나마 센터라도 찾아와 상담하면 두세 번 설득해서라도 눈높이를 맞춰줄 텐데 무턱대고 까다로운 조건만 제시하는 구직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며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이 아니면 아예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 '장미족(장기 미취업자)'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라고 말했다.

◆잡 쇼핑에 나서라

한국경제연구원의 '청년 실업의 현황과 원인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대졸자 네 명 중 한 명은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 실업자가 되고 있다. 지금껏 이들을 길러내기 위해 사회가 부담한 비용을 감안하면 인적 자원이 낭비돼 생기는 손실과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들 대다수가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캥거루족(族)'생활을 계속하면서 장기 내수침체나 사회복지 비용 증가 요인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용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일단 어디든 들어가서 사회 경험을 쌓아보고 맘에 들지 않으면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을 때까지 회사를 옮겨다니는 '잡 쇼핑(job shopping)'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며 "대기업이나 공기업만 쳐다보면서 몇 년씩 허송세월하는 비경제활동인구가 자꾸 늘어나는 것보다는 청년 실업률이 다소 올라가더라도 적극적인 구직자와 이직자(移職者)가 많은 게 건강한 노동시장"이라고 말했다.

차기현/강현우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