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확충펀드가 조성돼 내달부터 은행들에 대한 자본 수혈에 들어간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어제 총 20조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 중 1차로 12조원을 조성키로 하고 3월부터 자금 공급에 나서기로 했다. 자기자본비율을 높여 줄테니 은행들이 과감히 대출을 늘리고 기업구조조정에도 적극 나서라는 얘기다. 이유야 어떻든 시중 자금 경색의 근본적인 원인이 은행에 있는 만큼 경제위기를 타개(打開)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지난해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한은이 공급한 자금은 20조원이 넘지만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는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은행들이 위험한 대출보다는 단기금융상품인 MMF나 한국은행의 환매조건부채권(RP)처럼 비교적 안전한 곳에만 돈을 넣어 두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나 가계에는 돈이 풀리지 못하고 금융권에서만 맴도는 현상이 계속돼 온 것이다.

은행이 대출에 소극적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정부가 권고한 9% 이상으로 맞춰야 한다는 점도 큰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그런 점에서 은행의 대출 여력을 늘려주는 자본확충펀드는 현 시점에서는 꼭 필요하다. 실제 1차로 12조원이 지원되면 은행권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1.5%포인트 상승하고 약 120조원의 대출 여력이 생긴다고 한다.

문제는 자본확충펀드 조성이 바로 중소기업 및 가계대출 증가로 이어질까 하는 점이다. 은행들은 펀드자금을 받을 경우 어떤 형태로든 정부의 경영간섭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은행이 일단 자본확충펀드에 참여해 지원한도는 받아 놓겠지만 실제 자금 사용여부는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따라서 당국은 펀드자금이 중소기업 지원이나 기업구조조정 등에 쓰이는지 철저한 감독을 해야겠지만 그 이상의 간섭은 최소화,은행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할 것이다. 은행들도 자사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가경제 전체를 생각하는 대승적 자세로 실물경제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자본확충펀드는 또 다른 형태의 공적자금이다. 외환위기 때에 이어 또다시 공적자금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은행권의 발상전환을 촉구(促求)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