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어 학창시절을 되돌아 보면 아마 도시락만큼 많은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것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요즘 학생들이야 급식 덕분에 도시락 싸들고 학교 갈 일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도시락은 등교길의 필수품이었다.

제일 흔한 것은 책 정도 크기의 납작하고 네모난 양은도시락이었다. 한쪽에는 반찬을 담을 수 있게 칸이 나뉘어져 있는 게 보통인데 주로 김치 멸치볶음 콩자반 등으로 채워졌다. 그나마 반찬을 세 가지 정도 싸올 정도면 그래도 형편이 좀 나은 축이었고 가끔 보이는 계란프라이나 소시지는 최고의 인기 메뉴였다. 그렇지만 반찬이라고는 달랑 김치 한 가지만 담긴 도시락이 태반이었고 이마저 못 싸오는 아이들도 많은 시절이었다.

도시락의 유래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도시락 밥과 표주박 물을 뜻하는 '단사표음'(簞食瓢飮)처럼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걸로 봐서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다시 일본까지 전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일본에는 온갖 맛과 멋을 낸 비싸고 화려한 도시락도 많지만 우리에게 도시락은 아직까지는 단사표음처럼 검소함과 소박함으로 각인돼 있다. 도시락을 뜻하는 북한말 '곽밥' 에도 왠지 순수함이 묻어난다.

그렇게 중장년층의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던 도시락이 요즘 들어 다시 잘 팔린다는 소식이다. 인터넷 쇼핑몰 업계에 따르면 불황으로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도시락족(族)'이 늘면서 도시락 보온병 등 도시락 관련 제품 판매가 올 들어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몇배까지도 늘었다고 한다.

사실 몇년 전부터 중장년층을 겨냥해 양은 도시락에 밥을 담아 파는 소위 '추억의 도시락'이란 메뉴를 도입해 재미를 본 식당들은 몇몇 있었지만 도시락 자체가 요즘처럼 잘 팔리는 건 아주 이례적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전언이다.

하긴 물가는 오르고 감봉이니 뭐니 해서 지갑은 자꾸 얇아지는 마당이다.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비라도 절약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경제가 더욱 더 혹독한 겨울로 접어드는 모양이다. 도시락이 갖고 있는 소박함과 따뜻함으로 반찬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정말 절실한 때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