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대권 행보에 시나브로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6일 여의도에 정책연구소 '해밀'을 설립하고 8일에는 친이명박계 의원 모임인 '함께 내일로'에 참석한 데 이어 11일 이명박 대통령과 단독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 최고위원은 1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외국에 가 있는 바람에 지난번 당 최고 · 중진의원 초청 오찬에 참석하지 못해 겸사겸사 찾아뵌 것"이라며 "이 대통령은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는 친이계와의 연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나처럼 특별한 기반이 없는 사람이 그 문제에 대해 특별히 거론할 게 있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청와대 회동은 정 최고위원의 요청으로 이뤄졌으며, 당초 예정보다 시간이 길어져 2시간가량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이번 회동과 관련해 "대통령이 여당 중진의원을 만나 편안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정 최고위원이 친박(친박근혜)진영과 차별화된 행보를 본격적으로 펼치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과의 회동이 성사됐고,차기 대권구도를 일정부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특히 며칠 새 이상득 의원과 이 대통령을 잇따라 만나 당내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이다.

대선 직전인 2007년 12월에 입당, 그동안 당내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 소리 없는 행보를 계속해 온 정 최고위원이 친이 진영에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는 모양새라는 것.

정 최고위원은 '포스트 이명박' 도전 의사를 우회적으로 밝힌 상태다. 그는 지난 15일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선후보이자 차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으로 물망에 오르는 상황에 대해 "둘 다 할 수는 없다. 둘 중 하나를 잘 생각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