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브랜드 중시 경영으로 잘 알려진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10일(현지시간) 한국 상품 디자이너들과 함께 뉴욕을 찾았다. 한국의 디자인 제품을 현대 미술의 중심지인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시 · 판매하기 위해서다.

매년 두 곳씩 세계 주요 도시를 선정해 해당 지역 작품을 소개하는 '데스티네이션 디자인'행사를 벌이는 MoMA가 이번에 서울을 주제로 잡았다. 평소 MoMA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던 정 사장은 이 행사 후원을 자청해 출품작 공모부터 전시장 인테리어까지 모든 업무를 주관하다시피 했다.

정 사장은 "품질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시대는 끝나고 이제 디자인과 브랜드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한국의 디자인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보고 현대카드가 파트너로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찾기 어려운 이유는 디자인 환경이 척박한 탓도 있지만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이 세계 무대에 진출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MoMA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감상용'이라기보다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디자인'과 그 디자인에 깃들어 있는 '스토리'다. 그만큼 실용성을 강조한다. 정 사장은 "지나치게 한국적인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세계와 통할 수 있는 디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에는 35명의 작가들의 작품 75점이 전시됐다. 한국에서 병따개가 없을 때 숟가락으로 병뚜껑을 따는 데서 착안한 '숟가락 모양의 병따개'(디자인 그룹 '세컨드 호텔'작)도 있고,전통적인 도자기를 컵으로 만든 제품(윤상종 작)과 포켓용 초 세트(박진우 작), 한글이 적힌 현수막을 재활용해 만든 쇼핑백(송기호 작) 등 다양하다.

보니 매케이 MoMA 마케팅 담당 이사는 "그래픽이 독특하고 환경친화적인 재료를 활용한 작품들이 많아 전시 첫날부터 뉴욕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처음에는 왜 카드 회사가 디자인 관련 행사를 후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함께 일을 하면서 현대카드 임직원들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현대카드의 추천으로 MoMA에 도자기 작품을 전시하게 된 윤상종씨는 "자신의 작품이 뉴욕 MoMA매장에 전시된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2004년부터 MoMA와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1년에 대여섯 번씩 뉴욕을 찾을 정도로 디자인에 열정을 쏟았다. 2006년 11월부터 국내 처음으로 현대카드가 MoMA 온라인스토어를 운영하게 된 것도 이런 노력의 결실이다. 작년 11월에는 MoMA 와 공동으로 국내에서 첫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정 사장은 자사 카드도 젊은층을 어필하는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제품을 출시하는 등 디자인경영을 펼치고 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