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해외에서 각광을 받는 것처럼 헤어 디자이너들도 해외에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국내 헤어 디자이너의 대모격인 강윤선 준오헤어 대표는 한국의 뷰티 컬처를 세계에 알리려는 '통 큰' 여성이다. 31년 역사에 전국 53개의 직영 헤어숍을 거느린 준오헤어와 준오아카데미를 통해 젊은 스타급 헤어 디자이너를 배출하고 있어 주목된다.


◆젓가락 문화가 곧 한국적 크리에이티브

한국을 찾는 글로벌 뷰티 브랜드의 디자이너와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달라지는 한국의 스타일 변화에 '놀랍다'는 반응이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일본과 함께 주목받는 한국이 고유의 세련된 스타일로 부러움을 사고 있으며,'한류 열풍'이 부는 이유를 알겠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적인 헤어 디자이너 비달 사순이 수년 전 방한했을 때 "10년 전만 해도 헤어스타일이 모두 엇비슷했는데 지금은 너무 다양하고 개성이 있어 정말 큰 변화가 느껴진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일본은 특유의 섀기컷과 염색,다소 펑키한 스트리트 룩이 주류인 것과 달리,한국은 트렌디하지만 정제된 헤어스타일과 세련된 포인트를 주는 내추럴 룩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미국 스타일 리더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있다. 비달 사순의 말처럼 한국의 헤어스타일은 '단아한 생머리의 핀족'에서 '세련된 패셔니스타 룩'으로 진화하고 있다.

강 대표는 이 같은 진화 요인으로 '젓가락 문화'에 기반한 세계 최고의 손기술을 꼽았다.

그는 "한국인은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헤어 테크닉과 크리에이티브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일찌감치 '준오아카데미'를 시작해 젊은 헤어 디자이너들의 기술과 콘텐츠를 강화해 세계 무대로 진출을 준비해 왔다.

"끼 있는 헤어 디자이너에게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게 한 뒤 해외에서 현지인을 상대로 한 최초의 한국 뷰티 브랜드가 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글로벌한 감각과 '젓가락'의 기술이 조화된 한국의 뷰티 콘텐츠를 세계에 알리고 그 콘텐츠를 배우러 다시 한국으로 오게끔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스타 디자이너를 길러라

'비달사순''토니&가이' 등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헤어 브랜드이지만 출발은 영국의 작은 살롱이었다. 이들이 글로벌 브랜드로 발돋움한 데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토니&가이는 '패션과 헤어의 유기적 결합'을 강조했고,비달사순은 '최소한의 스타일로 만든 살아 있는 헤어 스타일'을 선보였다.

강 대표 역시 '기본에 충실한 한국적 디자인 감각'을 바탕으로 세계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선 스타 디자이너를 길러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2007년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헤어 디자인 경연대회인 '웰라 트렌드비전 어워드'에서 준오아카데미에서 철저히 훈련받은 인재들이 당당히 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경연대회 작품은 파격적이고 대담한 커트에 언밸런스한 느낌이 더해졌으며,강한 질감과 함께 가발을 떠올리게 할 정도의 불륨감이 특징이다.

하지만 해외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의 헤어 디자이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국내에서도 '웰라'나 '로레알 파리'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개최 · 후원하는 헤어스타일 대회가 있긴 하지만 아직 큰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다.

"감각과 끼 있는 인재를 찾아내서 세계에 보내는 것,그게 앞으로 남은 제 임무인 것 같습니다. " 그래서 강 대표는 최근 '스타 디자이너'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는 친숙한 뷰티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다.

'무겁고 단순한 검은 머리'라는 한계를 가진 한국인의 모발 특성상 우리는 늘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내놓은 트렌드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서구인의 모발처럼 다양한 컬러링,혁신적인 커트,아트적인 스타일링을 만들기에 적합한 조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 대표는 "오히려 이런 불리한 조건들을 이용해 새롭고 크리에이티브한 헤어 스타일과 헤어 제품들을 창조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는 "뷰티는 '디자인'과 '감각'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감각을 쏟아낼 수 있다"며 준오아카데미의 인테리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스타 디자이너를 만들기 위해선 교육뿐 아니라 환경까지 중요하다. 작지만 큰 '디테일의 힘'이 세계 속에 한국의 뷰티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기 때문이다.

/스타일 칼럼니스트 · 브레인파이 대표 www.cyworld.com/venus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