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80세로 태어나 날마다 젊어진다면…
"기상천외한 착상을 러브스토리로 옮겨놓은,믿을 수 없도록 뛰어난 작품".

오는 22일 열리는 제81회 아카데미 영화제 후보작 중 가장 많은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격찬은 결코 과장된 수사가 아니었다.

12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가진 시사회에서 이 영화는 2시간46분 동안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네 일생을 반추하게 만드는 황홀한 경험을 줬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세븐'의 데이빗 핀처 감독과 브래드 피트가 다시 뭉쳐 스크린에 옮긴 이 작품은 생의 근원적인 비극성을 절묘하게 형상화했다.

1918년 어느 여름날,여든 살의 얼굴을 가진 갓난아기 벤자민 버튼이 태어난다. 주변의 놀라움 속에 버튼은 해가 갈수록 조금씩 젊어진다. 그리고 어느날,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는 날마다 젊어지고 그녀는 점점 늙어간다.

벤자민은 젊어지고 싶은 인간 욕망을 상징하지만 그것이 수반하는 두려움과 공포도 간직한 인물이다. 시간을 거스르는 그의 삶은 우리네 인생을 더욱 극적으로 바라보도록 이끈다. 노환으로 숨져가는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심경은 더욱 쓰라리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만남에서도 감정이 일치하는 순간은 극히 짧고,어긋나는 시간은 길다. 싱싱한 육체의 이십대,그들은 오랜만에 만나지만 곧 헤어지고 만다.

벤자민은 젊어졌다 해도 여전히 '중늙은이' 형상이다. 한창 때의 발레리나인 그녀 곁에 있는 젊은 애인과는 비교할 수 없다.

10여 년 뒤 그녀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에는 스스로의 열등감으로 인해 완벽한 성인으로 변한 벤자민을 거부한다.

40줄에 들어서야 그들은 행복한 동거를 시작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자 벤자민의 고민은 깊어진다. 점점 어려지는 자신이 갓난아이에게 아버지 구실을 못할까 두려워서다.

영화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도 현실의 사소한 입장 차로 소중한 기회들을 얼마나 많이 놓치는지 가르쳐준다.

이 때문에 우리네 일생 동안 행복한 순간은 얼마나 짧은지도 반추시킨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사람들은 세대를 초월해 사랑을 추구한다는 불변의 진리도 들려준다.

인생에 대한 이 같은 성찰이 깊은 울림을 주는 까닭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한 데 있다.

젊어지는 브래드 피트의 얼굴과 눈부신 처녀에서 할머니로 늙어가는 상대역 케이트 블란쳇의 분장은 탁월하다. 그들의 엇갈리는 얼굴 모습은 만남 자체가 생의 비극임을 떠올리게 해준다.

이 영화와 함께 미국 최초로 동성애자로 시의원에 당선된 하비 밀크의 마지막 8년을 담은 '밀크',인도 빈민가 청년의 퀴즈왕 도전기를 그린 '슬럼독 밀리어네어',패전 후 독일을 배경으로 남녀의 질긴 사랑과 인연을 다룬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영국 TV 토크쇼 진행자 데이비드 프로스트와 사임한 미국 대통령 닉슨의 대결을 그린 '프로스트 vs.닉슨'(이상 3월 국내 개봉) 등이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놓고 겨룬다.

이 중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최근 골든글로브 드라마부문 작품상,감독상 등과 함께 미 감독조합(DGA) 감독상을 받았고,8개 부문 후보에 오른 '밀크'는 숀펜이 미 배우조합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는 등 아카데미 영화상 후보작들의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