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지난달 내수판매가 1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급감했다. 정부가 전 · 후방 산업연관효과가 큰 자동차 내수를 살리기 위해 작년 말 개별소비세를 낮추는 등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얼어붙은 소비를 되살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2일 현대차 등 완성차 5사에 따르면 지난달 내수 판매는 7만3537대로 작년 1월보다 24.5%나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1월 자동차 내수판매가 8만대 밑으로 떨어진 것은 1999년 1월(7만7928대) 이후 처음이다.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업체들도 3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1월 성적표를 내놨고,미국업체들 역시 30% 이상 판매실적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외환위기 때로 돌아간 자동차 시장

현대차가 지난달 국내에서 판매한 차량은 3만5396대에 불과했다.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1998년 1월의 1만7526대 이후 최악의 실적이다. 작년 1월(5만1918대)보다 31.8%,전달(4만1562대)보다 14.8% 줄었다.

GM대우자동차는 라세티 프리미어 등 신차 효과에도 불구,6914대를 파는 데 그쳐 작년 1월에 비해 20.4% 감소했다. GM대우 관계자는 "설 연휴에 따른 근무일 감소에다 수요가 급감하면서 타격을 받았다"며 "작년 12월 정부가 개별소비세를 낮췄지만 반짝 효과에 그친 것 같다"고 말했다.

르노삼성과 쌍용차 역시 1월 내수판매가 각각 8022대와 1149대로 11.3%, 77.0% 감소했다. 작년 신차 출시가 많았던 기아차만 2만2056대로,작년 동기와 비슷했다.
한ㆍ미ㆍ일 車내수시장 '아찔한 역주행'
완성차 5사는 심화하는 내수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는 아반떼 쏘나타 등의 할인폭을 10만~30만원 확대했고 GM대우는 최고 500만원을 깎아주는 '희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기아차는 혼류생산 등 유연 생산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강철구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이사는 "소비심리 위축에다 할부금융 문제까지 겹치면서 내수가 최악"이라며 "미국 유럽 등과 같이 정부가 주도적으로 내수진작책을 내놓지 않으면 실기(失期)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협회는 △할부금융 정상화 지원 △경유차 환경개선 부담금 폐지 △유류세 재인하 등을 요청하고 있다.

◆미 · 일 자동차업계도 '비상'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의 자동차 내수시장도 새해 들어 더 얼어붙었다. 일본자동차판매연합회(JADA)는 2일 경차를 제외한 1월 일본 내 자동차 판매대수가 17만4281대로,전년 동기 대비 27.9% 감소했다고 밝혔다. 1975년 5월(17만7480대) 이후 34년 만에 최저치다. 월별 신차 판매는 작년 11월(-27.3%) 이후 3개월째 매달 평균 20% 이상 감소했다. 3개월 연속 20% 이상 줄어든 것은 1998년 1분기 이후 처음이다.

회사별로는 도요타의 경우 고급 차종인 렉서스를 제외하고 8만1985대를 팔아 전년 동기 대비 22% 급감했다. 혼다는 31% 감소한 2만2087대를 팔았고,닛산은 31% 줄어든 3만786대를 판매했다. 지난 1월 세계시장 전체 판매 대수는 도요타가 37%,혼다가 35%,닛산이 31%씩 감소했다.

지난달 북미시장의 자동차 판매도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블룸버그통신이 자동차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크라이슬러는 1월 차 판매가 49% 줄었고,GM은 39%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포드도 33%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가 14개월 연속 감소한 것이며,4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줄어든 것이다. 미국에서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고 있는 것은 경기침체로 신차 수요가 위축된 데다 오토론 등 신용공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재길 기자/도쿄=차병석/뉴욕=이익원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