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3동의 달동네 양지마을.어른 한 명이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 주소도 문패도 없는 낡은 집 앞에서 노원구청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인 김정한씨(38 · 사회복지사)가 소리친다. "김말순(가명) 할머니 계세요?"

불 꺼진 집 안에서 문을 빼꼼히 열고 나온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홀로 살고 있는 독거노인.김씨를 보자마자 손을 부여잡고 매달린다.

"지금 전세 1000만원짜리에 살고 있는데 집주인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0만원으로 돌려 달라고 그래.몸이 불편해 일도 못하는 내가 어디서 매달 10만원을 구하겠어? 무슨 수가 없을까?"

김씨는 할머니에게 관련 규정을 자세히 설명해준 다음 "딱한 처지는 알겠지만 규정상 방법이 별로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차마 발길을 떼기가 어려웠을까. 김씨는 "현재 할머니 집에 실내 단독 화장실이 없으니까 시나 복지단체가 운영하는 다세대 주택에 입주할 때 가산점이 붙을 수 있다"며 "얼른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위로한다.

김씨는 상계3 · 4동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10여년간 담당해온 베테랑이다. 그는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살기 어렵다. 도와 달라'는 상담 건수와 민원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봄 · 여름만 해도 하루 상담 건수가 2~3건 정도였으나 요즘은 10여건을 넘는다는 것.그는 "웬만하면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오게 됐다고 하시는 일용직 종사자들이 많다"며 경제위기로 삶이 더욱 팍팍해지고 있는 저소득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사회복지사는 어떤 일을 합니까.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거해 지역사회의 생활 능력이 없는 주민이나 노약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전담하는 사람입니다.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사회복지가 예전에는 공적 부조와 생계 지원 위주였으나 업무 범위가 확대되면서 빈곤 · 저소득층에서 중산층으로,장애인 · 노인에서 일반인으로 대상자가 늘어났죠.그러다 보니 지금 가장 큰 업무는 노인교통카드 배부예요. 지난해 12월15일부터 신청서를 접수하고 있는데 하루 300명씩 찾아오세요. 어르신들은 정말 부지런해서 오전 9시10분쯤 민원상담을 시작하는데 하루 200~300명 상담하면 다른 업무는 못봐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보육료 지원과 소득 및 자산 조사도 사회복지사의 중요한 업무예요. "(인터뷰를 위해 기다리는 동안에도 각종 상담 신청자가 끊이지 않았고 인근 종교단체에서 기부한 미역을 받아가려는 방문객들도 줄을 이었다. )

▼야근이 많을 것 같은데요.

"민원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업무는 오후 6시까지 끝내야 해요. 민원 업무를 하다 보면 1시간이면 끝낼 행정업무를 반나절씩 끌고 가기도 해서 일과시간에는 민원상담이나 접수를 하고 일과 후에 야근을 하면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날이 많아요. 일이 언제나 넘치는 상황이죠."

▼어렵거나 곤란한 일도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사회복지 대상자 중 기초생활수급자만 250가구나 돼요. 하루에 한 집 방문하기도 힘들죠.가령 1월1일에 혼자 사시는 어떤 할아버지를 방문한다면 하루에 한 가구씩 방문해도 그 할아버지를 다시 보려면 다음 해가 됩니다. 그 사이에 돌아가실 수도 있고,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하는 경우도 있죠.수급자들과의 관계가 늘 원만한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사회로부터 핍박받았고 편의시설은커녕 무시만 당했던 분들이 많아 생존을 위해 국가기관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죠.논리나 법보다는 힘으로 대하는 게 빠르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동사무소에 와서 큰소리치는 것은 물론 멱살잡이도 합니다. 저도 여러 번 당해봤습니다. 여러 차례 맞기도 했고요. "

▼자산 조사는 뭐 하는 건가요.

"사실 무엇보다 어려운 게 자산 조사예요. 자산 조사는 원래 부당한 수혜자를 골라내기 위해 수급 대상자의 재산 상태를 종합적으로 조사하는 것인데 그 결과에 따라 지원 여부가 결정되다 보니 '왜 저 집은 해주고 나는 안 해주냐' '책상머리에 앉아서 서류로만 검토하는 너네가 무슨 전문가냐'는 불만이 많죠.실제 형편은 괜찮은데 서류를 완벽하게 갖춰 혜택을 받으려는 분들도 있다 보니 잡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사례가 너무 많아서 업무 자체도 복잡하고요. "

▼보람을 느끼는 일도 많을 것 같은데요.

"한번은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독거노인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경찰과 응급대원을 불러 집으로 찾아갔더니 사경을 헤매고 계시더라고요. 급히 병원으로 옮겼는데 폐결핵 환자라며 어떤 병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 병원 저 병원 참 많이도 찾아다녔고,병원 측과 싸우기도 많이 했는데 결국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몇 년 후 가슴이 너무 아파 병원에 가보니 제가 중증 폐렴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당시 생후 100일밖에 되지 않은 애를 포함해 온 가족이 폐렴약을 먹어야 했고,저는 격리수용돼 아이 100일 잔치도 못봤죠.하지만 지금 똑같은 경우를 맞더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사회복지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1997년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시험을 보고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이 됐습니다. 사회복지 직렬 9급 공무원에 합격한 지 1년반 만에 임용받았습니다. 그동안에는 민간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일했어요. 임용 당시 경쟁률은 50 대 1 정도였는데 요즘엔 직장이 안정적인 공무원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경쟁률이 더 세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사명감이 있어야 할 수 있겠어요.

"사회복지에 뜻은 없고 공무원 직업의 안정성만 보고 지원한 후배들은 막상 업무에 잘 적응하지 못해요. 학교에서 '사회복지 서비스가 어쩌고~'하는 식의 이론적인 것만 접하다 현장에 와 보면 이론과의 괴리가 커서 충격을 받습니다. 상소리에 폭력까지 휘두르는 분도 적지 않죠.복지단체나 시설 등에서 일하는 민간 사회복지사는 주로 주는 일을 하지만 공무원은 뺏는 업무도 많이 하거든요. "

▼일을 하면서 아쉬운 점은 없나요.

"사회복지 업무라는 게 컴퓨터 자판기에 손때 묻히기보다는 구두 뒷굽이 닳아야 하는 직업인데 요즘에는 일거리가 몰리면서 구두는 새것인데 자판기는 찌들어가고 있어요. 정부에선 찾아가는 복지행정을 하라고 하지만 인력도 부족하고 현실도 그렇지 않죠.쏟아지는 복지정책을 감당하자니 현장에는 나갈 시간이 없어요. 행정에 매달리다 보니 대상자들에 대한 체감도가 떨어지는 문제도 있고요. "

▼댁에선 불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자녀들이 사회복지사가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하하! 다행히 아내도 예전에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다 만났습니다. 아들이 둘인데 앞으로 자라면 둘 다 사회복지 일을 시키려고 합니다. 이제 다섯살짜리 꼬마 녀석이 '시각장애인' '비장애인'이란 말을 하는 걸 보면 무지 기특하더라고요. "

글=김동욱/사진=김영우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