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직을 성실히 수행하고 모든 능력을 다해 헌법을 보존하고 수호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버락 오바마가 20일(현지시간) 미국의 새 역사를 썼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사용한 성경에 왼손을 얹고 정확히 35개 단어(영문 기준)의 취임선서를 마치면서 오바마는 마침내 첫 흑인 대통령(44대)에 올랐다. 마틴 루터 킹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가 1963년 워싱턴 링컨기념관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을 한 후 46년 만에 미 대통령도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과 자질과 능력에 따라 선출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킹 목사의 꿈을 이룬 오바마는 새로운 큰 꿈을 향한 항해사로 나섰다. 오바마는 일찍이 '변화(Change)'와 '희망(Hope)'을 기치로 내걸면서 "백인과 흑인의 미국도,아시아계와 히스패닉계의 미국도 아닌 통합의 미국만이 있을 뿐이다""보수의 미국도,진보의 미국도 아닌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인종,계층,이념 간 통합을 강조했다. 오바마는 그 추진 엔진으로 '우리는 할 수 있다(Yes,we can)'는 자신감을 미국민에게 강력히 주문했다. 미국민이 대공황 때 뉴딜정책으로 두려움을 극복한 것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과 미국발 금융위기로 국제사회에서 추락한 미국의 리더십 복원을 위한 5대 키워드도 제시했다. 화합(union) 회생(recovery)과 책임(responsibility),그리고 공존(co-existence) 재건(renewing)이다. 그는 먼저 화합을 강조했다. 정치권의 갈등과 보수 및 진보세력으로 갈라진 이데올로기 대립,백인 대 유색인 간 인종 대결,부자와 빈곤층 간 격차를 메우기 위한 것이다. 오바마는 내각 구성에서도 정치적 라이벌인 힐러리 클린턴은 물론 공화당 인사나 소수 인종 출신을 입각시켰다.

오바마는 워싱턴포스트(WP)와 가진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세대는 최고위직에 흑인들이 채워져 있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자라게 될 것"이라며 "이 같은 큰 변화는 흑인 어린이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백인 어린이들이 흑인 어린이들을 바라보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이는 무시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회생'은 침체일로에 있는 경제위기에서 국가와 국민을 구해내려는 노력으로 받아들여진다. 오바마는 취임 직후 8000억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경기부양책을 제시할 방침이다.

세 번째로 제시한 책임은 경제 회생을 위한 각종 정책 추진과 이라크 전쟁 종료,아프간 전쟁 확충이라는 현안 처리 과정에서 국민에게 요구하는 덕목이다. 오바마는 미국민에게 제2 건국에 나서는 심정으로 인내와 책임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대선 과정에서 내놓았던 공약을 취임 후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대외정책의 핵심 키워드로는 공존이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펼쳤던 힘의 외교가 국제사회에서 외면당했다는 판단에서다. 마지막으로 내건 '재건'은 새로운 미국 건설을 향한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오바마는 지난해 8월 말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할 때 국제사회에서 곤두박질친 미국의 리더십을 복원하겠다고 언급했다.

오바마는 취임식을 하루 앞둔 19일 월터 리드 보훈병원의 상이용사들을 깜짝 방문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이어 그는 집없는 10대들의 응급 보호시설인 컬럼비아의 사샤 브루스 하우스를 찾아 30여명의 청소년과 함께 벽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가구를 설치하는 등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오바마는 이곳에서 "미국민의 진정한 기질은 힘들 때 나타난다"면서 "다시 한번 그 기질을 발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한 고교를 방문해서는 "차기 대통령으로서 나는 일하는 정부를 만들 것을 약속한다"며 "그러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며,누군가가 해주기를 기다린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며 우리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에 거는 미국민의 기대는 뜨거웠다. 취임식을 보기 위해 캘리포니아 클레먼트에서 남편과 함께 온 필리스 스트릭랜은 "흑인 최초의 대통령 탄생에 너무도 흥분되고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이날 취임식장 주변에는 영하 7도의 기온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2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바마에 대한 지지율은 80%를 넘어 역대 최고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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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