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봉책..건전 기업에 악영향 우려"

금융팀 = 전문가들은 20일 은행권이 발표한 건설.조선사 신용평가에 대해 `구조조정을 통한 불확실성 해소'라는 취지를 살리지 못한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평가했다.

업계와의 이해 관계를 고려할 때 시중은행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정부도 몸을 사리다보니 `용두사미'에 그쳤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옥석'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아 불확실성이 남게 되면 금융권이 기업 대출을 꺼리면서 신용경색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 교수

가장 중요한 것은 금융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돈이 돌아야 한다.

그동안의 상황을 볼 때 퇴출 대상이 거의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은행이 구조조정 대상을 최소화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조조정이 시장에서 미봉책으로 인식된다면 돈은 계속 돌지 않고 건전한 기업도 악영향을 받게 된다.

해외경제가 빨리 좋아진다면 크게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해외경제가 생각보다 어려워진다면 이번 구조조정에서 걸러지지 않은 부실기업들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고 결국 `2차 구조조정'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사이에 계속 자원이 낭비된다는 점이다.

이제는 새 경제팀이 맡아 처리해야 한다.

당장 새로운 구조조정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앞으로 구조조정에서는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더라도 평가 기준의 일관성이나 평가수위 등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 임영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현재의 제도로는 다른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민간 은행들이 기업을 평가하고 그에 대해 이의가 제기되면 다시 조정하는 등의 자율적인 논의 방식을 통해서는 과감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참여자들의 문제가 아니고 밑에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시스템의 문제다.

새 경제팀이 출범했으니 새로운 틀을 만들어 제대로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조조정은 정부가 주도하지 않고서는 확실히 진행되지 못한다.

새로운 경제팀이 톱-다운 방식으로 신속하고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한다면 금융기관 등 경제주체들이 불안감으로 인해 몸을 사려 돈줄이 막히는 현상이 완화되고 경제의 선순환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 교수

알려진 부실에 비해 구조조정의 폭이나 깊이가 작다.

건설사의 미분양이 공식통계로는 16만 채, 업계 추정으로는 30만 채이며 이에 따른 부실규모가 50조∼ 60조 원에 이른다는 점에서 퇴출사가 거의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구조조정은 누군가 앞장서야 한다.

현재는 구조조정을 책임지고 끌고나가는 힘이 부족하다.

은행의 경우, 거래기업 퇴출 시에 부실채권이 늘어나므로 내부에 책임지려는 직원이 없다.

정부는 개입했다가 나중에 안 좋은 일만 생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법리적으로 봐도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권한이 없기 때문에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원만한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정부가 구조조정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하면서 끌고나가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한편으로 토목공사를 확대하고 있어 구조조정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퇴출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구조조정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며 그에 대해 시장에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원칙이 공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숫자는 의미가 없다.

앞으로 건설.조선뿐 아니라 전 업종으로 구조조정이 확산하기 전에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설정해둬야 한다.

새 정부가 부실기업을 떨어내는데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경제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살려야 할 기업을 골라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미래 지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건전성 여부도 중요하지만 발전 가능성이나 산업 기여도 등의 질적 부문도 감안해야 한다.

외환위기 때와는 기업 평가 기준이 같을 수 없다.

무조건 다 쳐내서 되는 게 아니다.

지원 대상에 오르지 못한 기업이 자연히 퇴출당하도록 해야 한다.

구조조정 방향과 원칙이 분명히 서 있으면 C&중공업 경우처럼 설왕설래하는 경우도 생기지 않는다.


◇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번 구조조정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물론 딜레마가 있다.

환란 당시에는 구조조정에 대한 추진체계가 있고 공감대도 형성돼 있어 획일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법적 문제도 발생할 수 있는 등 상황이 복잡하다.

더욱이 기업들의 수준이 달라서 판정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나쁜 평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구조조정에서는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고 있다.

기업들은 당장 부도가 나는 것이 아니어서 최대한 버티고자 한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제대로 진행돼야 한다.

불황은 공급 과잉에 따른 영향이 큰 데, 구조조정이 진행돼야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환란 이후 기업들이 제대로 퇴출되지 않아 자연스런 구조조정이 안 되고 있다.

정부는 과거와 달리 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하기가 쉽지 않지만, 시장 규율을 확립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서울=연합뉴스) 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