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쌓아올린 탑이 일순간 무너졌다.
신년들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던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미국발 악재에 또 한번 무릎을 꿇었다.

종합주가지수는 1120선은 물론 장중 1110선까지 무너지며 투자자들의 가슴을 철철이게 만들었다. 1100선마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오전에 사이드카 발동에 이어 오후들어 프로그램 매물이 봇물터지듯 쏟아지면서 국내 주식시장을 불안 그자체였다.

지난해말 정부의 관리로 차츰 안정세를 찾아가던 환율도 주식시장 불안 여파로 올들어 최대 상승폭을 기록하며 1390원대를 돌파, 1400원선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발 악재로 국내 금융시장 불안 예고
국내 금융시장 불안은 예견됐던 일이다. 밤사이 열린 미국 뉴욕 증시가 소비부진으로 3% 가까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미국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전날보다 248.42p(2.94%) 떨어진 8200.14로 마감하며 8200선을 간신히 지켜냈다. 최근 견조한 모습을 보이던 나스닥 종합지수도 56.82p(3.67%) 내린 1489.64를 기록했고, S&P 500지수도 29.17p(3.35%) 급락한 842.62로 장을 마쳤다.

미국의 12월 소매판매가 연말 쇼핑시즌의 판매 부진으로 전문가 예상치보다 두배 넘게 악화되면서 투자심리가 급속히 냉각됐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12월 소매판매가 3432억달러를 기록해 전달보다 2.7%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전문가들은 1.2%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었다. 소매판매는 6개월 연속 감소해 1981년 이래 가장 오랫 동안 감소세를 지속했다.

지난 한해 동안 총 소매판매도 0.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여파로 가전업체 GE가 5.6% 떨어졌고,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6.1% 하락했다.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와 JC페니도 각각 5.8%, 7.6% 폭락했다.

독일의 도이체방크가 4분기 사상 최대인 6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발표하고, 유럽 최대 은행 HSBC가 배당을 절반 수준으로 줄일 것이라고 전망되는 등 유럽 대형은행 악재로 금융주에 대한 불안이 되살아났다.

주식 브로커리지 부문을 매각해 모거스탠리와 합작회사를 차리는 데 합의한 씨티그룹이 재무건전성 악화 우려로 23.2%나 굴러떨어졌다. 씨티그룹은 자금난으로 대규모 사업축소를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11월 기업재고는 0.7% 감소해 3개월 연속 감소했지만, 기업판매도 5.1% 하락했다.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12월 미국 수입물가는 전달보다 4.2% 떨어졌고, 수출물가는 2.3%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주가지수 71p 폭락…코스닥도 6% 가까이 급락
15일 서울 주식시장은 미국 소비경기 침체와 고용부진 문제가 불거지면서 올들어 가장 큰 폭으로 추락했다. 이날 주식시장에서 종합주가지수는 전날보다 71.34p(6.03%) 폭락한 1111.34로 마감됐다.

올 해 최대이자 지난 해 11월20일 이후 두 달여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외국인과 기관이 모두 '팔자'에 나섰다. 프로그램 순매도만 5600억원을 넘게 쏟아졌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영국 피치IBCA가 현대차와 기아차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하향조정하면서 운수장비업종의 하락폭이 8%를 넘었으며, 기계, 증권도 8%대, 금융, 건설은 7%대의 폭락세를 연출했다.

시가총액 상위 100개 종목이 모조리 내리고 있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중공업, KB금융, 신한지주, 현대자동차, LG디스플레이, LG, 두산중공업 등이 4~6% 급락하고 있다.

최근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던 코스닥도 전날보다 2.28p(5.84%)가 급락한 343.35로 역시 연중 최대 낙폭을 갈아치웠다.

개인과 기관이 매수에 나서면서 낙폭을 소폭 줄이는 듯 했지만 외국인 매도 공세에 지수 방어는 역부족인 모습이었다. 코스닥지수는 지난 6일 이후 7거래일만에 350선을 다시 내줬다.

◆주식시장 불안 원달러 환율 폭등…1390원선 돌파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원달러 환율은 개장과 함께 급등, 장중 한때 1390원선을 돌파하며 1400원선을 위협하기도 했다. 환율은 전날보다 44.5원(3.30%) 폭등한 1392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같은 환율 레벨은 지난달 10일 1393.80원이후 최고 수준이다. 정부가 관리한 연말 환율이 원래 수준으로 회귀한 셈이다.

무엇보다 이날 환율이 급등한 것은 미국발 악재로 국내 주식시장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수급상황도 좋지 못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국내 증시에서 2000억원억치의 주식을 순매도하면서 환율 상승을 부추겼고 투신권에서 환헤지 매물을 내놓으면서 환율 폭등을 이끌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시장 수급보다는 국내 증시에 따라 환율이 움직이고 있다"며 "국내 증시의 추가하락에 여부에 따라 1400원선도 힘없이 무너질수 있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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