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전염성이 강하다. 경기침체로 주위에 실업자가 늘면 "나도 언제 회사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급속히 확산된다. 미국 뉴욕에서 HRCap이란 헤드헌팅업체를 운영하는 김성수 사장(49)도 그런 경우다. LG그룹 미주본부 인사부장으로 일하던 김 사장이 귀임명령을 받은 건 2000년.당시 잘나가던 김 사장이었다. 아무리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렵다고 쳐도 잘릴 염려는 없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후였다.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월급쟁이라면 숙명적인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김 사장은 고민에 빠졌다. 14년 동안 든든한 보호막 역할을 해 준 직장 울타리를 넘어 홀로서기를 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외환위기가 터진 뒤,줄곧 스스로의 길을 가기로 생각했지만 결행은 쉽지 않았다. 결국 실직의 불안감에서 벗어나려면 계기가 있을 때 작심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능하지만 그에 걸맞은 직장을 찾지 못하는 교민 자녀들을 누군가는 어울리는 기업에 연결시켜줘야 한다는 '사명감'도 작용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자신의 전공을 살린 HRCap 창업이다. 2000년 6월이었다. '한국과 미국을 연계한 인력 비즈니스'라는 참신한 사업 모델로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다. 그렇지만 그리 녹록한 게 아니었다.

창립 첫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은 '사이버 잡(job) 박람회'.사이버 상에 1000개의 국내 회사들이 부스를 열고 1만명의 교포 인력이 참여하는 대규모 채용 마당을 연다는 계획이었다. 결과는 '아니올시다'였다. 실제 참여한 기업은 28개사뿐.외환위기 후유증이 예상보다 큰 탓이었다. 결국 창업 자금(20만 달러)을 몽땅 날렸다. 8명의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돈은 다 날렸고요. 남은 것이라곤 절망과 눈물뿐이었습니다. "

사업을 접을지,다시 시작할지를 선택해야 했다. 가용자원이라곤 '김성수' 자신과 사이버 박람회를 통해 확보한 2020명 정도의 인재정보(이력서)뿐.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사무실은 부인에게 맡기고 김 사장은 뉴욕과 뉴저지 일대 교포기업을 찾아다녔다. 돈 벌 욕심으로 사람만 채용해줄 것을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LG에서 갈고 닦은 인사 관리 기법을 전해주려고 노력했다. 고객에 필요한 것을 먼저 주지 않으면 비즈니스 기반을 구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씨를 뿌린 지 1년 6개월가량이 지나자 성과가 나타났다. 당시 연 매출 7000만달러 규모의 한인 교포가 운영하는 의류업체인 사우스폴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막혔던 패가 한번 풀리자 2002년 하반기 들어 사업이 급팽창했다.

미국에 진출한 지 · 상사들이 현지화를 위해 현지 채용을 늘릴 때도 HRCap 문을 두드렸다. 2002년 말부터는 삼성 LG 등 대기업 본사에서도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하는 유능한 교포 2세 전문인력을 구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2006년부터는 JP모건체이스 HSBC로부터 이중 언어 구사자를 구해달라는 의뢰를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국내 일류 대기업에 미국인 인사관리 책임자(임원급)를 소개하는 등 미주 한인 최대 리쿠르팅 업체로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2006년에는 맨해튼,LA에 잇따라 사무실을 개설했다.

경제위기가 닥친 지금 김 사장이 눈여겨 보는 인재는 월가의 교민 2세들이다. 금융위기로 월가에서 떨려나는 이들을 한국 금융회사에 소개하는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설 경우 인수 · 합병(M&A) 관련 인재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이 분야의 인재 정보구축에도 각별한 정성을 쏟고 있다.

물론 요즘 같은 불황기에는 헤드헌팅 사업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기 악화로 기업들이 채용을 꺼리는 탓이다. 하지만 깊은 나락에 떨어져 봤던 김 사장은 자신있다. "위기는 항상 반복되는 것"이라며 "좀 더 멀리 보면 사업을 오히려 키울 수 있는 호기"라고 강조한다. 위기란 느끼는 사람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