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팀 = 은행들이 작년 하반기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생존을 위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관리에 치중하면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대출이 급격히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 대출이나 담보가 확실한 주택대출은 크게 늘어나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빠르게 하락하고 있지만 회사채 금리는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어 중소기업은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신속한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의 적극적인 대출을 유도하고 부실 가능성이 있는 은행에 대해서는 미국 등 선진국처럼 공적자금 투입과 같은 과감한 조치로 자금중개 기능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中企.자영업자 외면..대기업 치중
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민.우리.신한.하나.

외환.기업은행 등 6개 주요 은행의 원화대출 잔액은 작년 말 현재 648조1천899억 원으로 전년 말보다 77조6천31억원(13.6%) 증가했다.

2007년 증가액 73조2천911억원을 웃돌았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299조28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37조7천416억 원(14.4%) 늘어났다.

하지만 연간 증가액은 2007년의 50조7천812억 원(24.1%)과 비교해 13조 원가량 줄었다.

은행들은 작년 상반기 중소기업대출을 26조2천528억 원 확대했지만 금융시장 경색이 심화된 하반기에는 11조4천888억 원 늘리는 데 머물렀다.

작년 12월에는 은행들이 BIS 비율 하락을 막으려고 중소기업대출을 전달보다 1조8천934억 원 줄였다.

자영업자(SOHO.소호)에 대한 대출은 중소기업보다 더 위축됐다.

국민.우리.하나은행 등 3개 시중은행의 소호대출 잔액은 작년 말 현재 55조2천952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전년 말보다 4조218억원(7.8%) 증가하는 데 그친 것으로, 2007년 증가액 7조5천840억 원(17.4%)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은행들은 신용도가 좋은 대기업 대출을 크게 확대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6개 은행의 대기업대출 잔액은 작년 말 현재 58조2천564억원으로 1년 새 21조4천64억 원(58.1%) 급증했다.

2007년 증가액 8조6천369억 원(30.6%)의 2.5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79조4천731억 원으로 1년간 14조2천526억 원(8.6%) 늘어났다.

이는 2007년 증가액의 4조8천428억 원의 3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 주택금리 하락..회사채금리 고공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의 전방위 유동성 공급으로 시중금리는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특히 각종 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는 연 3%대로 진입했다.

이달 91물 CD 금리는 연 3.93%로 마감했다.

이는 2005년 10월17일(3.92%) 이후 3년2개월여 만에 최저치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의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최저 금리도 연 4%대로 낮아졌다.

이번 주 적용되는 국민은행의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69∼6.19%로 작년 10월 6일과 비교했을 때 1.87%포인트나 하락했다.

작년 10월 초에 주택담보대출 1억 원을 받았다면 이번 주부터 대출금리가 1.87%포인트 떨어져 월 15만6천 원 정도의 이자 부담을 덜게 된다.

우리은행는 연 4.83∼6.13%, 신한은행은 연 4.73∼6.03%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적용한다.

국민은행의 직장인 신용대출 금리는 연 5.53∼10.59%로 10월 초보다 1.77%포인트가량 낮아지는 등 신용대출 금리도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채 등 신용위험이 있는 크레디트물 금리는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3년 만기 회사채(AA-등급) 금리는 2일 기준 7.73%로, 작년 10월 2일 7.78%보다 0.05%포인트 낮아지는데 그쳤다.

반면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이 기간 5.70%에서 3.42%로 2.28%포인트나 떨어졌다.

금융권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고 채권시장안정펀드, 자본확충펀드 등이 본격적으로 가동하더라도 회사채 금리와 국고채 금리의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크레디트물 금리가 일시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은행 관계자는 "구조조정으로 기업의 옥석이 가려지면 기업별로 채권 금리가 더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곳이 나올 것"이라며 "회사채 금리는 당분간 불안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신속한 구조조정이 해답"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중소기업대출을 축소하는 것은 건전성 지표 하락과 추가 부실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은행들이 증자 등을 통해 1월 말까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12% 이상, 기본자본비율을 9% 이상으로 올려놓더라도 부실 채권이 늘어나면 건전성 지표의 악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찬 수석연구원은 "BIS 비율이 떨어지면 은행들도 생존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며 "대출이 늘어나면 부실채권이 많아져 이 비율이 또 낮아진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장도 "자본 확충을 무리하게 하면 총자산이익률(ROA)과 자기자본이익률(ROE)도 나빠진다"며 "은행도 생존과 수익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기업 대출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위기 대응 체제를 확실히 갖추고 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옥석이 가려지면 부실 우려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들어 은행들이 우량 기업에 대해 자금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와 금융시장을 빨리 안정시키기 위해서 정부와 정치권에서 공적자금 조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올해 상반기에 기업들의 부실이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만큼 정부와 금융권이 신속한 기업 구조조정을 하려면 금융당국이 구조조정 전담팀을 다시 만들고 정치권이 진지하게 공적자금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