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이산, 버섯바위의 미소 시간도 멈추는 듯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방콕과 파타야가 자리잡은 태국 중동부지방이 열정을 뽐내고 푸껫으로 대표되는 남부지방은 고급 리조트 호텔과 하얀 백사장의 풍요로움을 자랑한다면 북부지방은 소박하고 담백하다. 물론 북부지역 중에도 치앙마이처럼 코끼리 트레킹과 뗏목 래프팅으로 유명한 곳도 있지만 메콩 강을 품고 있는 북서부지방에는 삶의 질박함이 숨어 있다. 라오스와 이마를 맞대고 있는 '이산'에서 때묻지 않은 태국의 소박함을 만나보자.
끄렝짜이의 나라
태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에 "마이 뺀 라이"(괜찮아요)와 "끄렝짜이"(겸양)가 있다. 뭔가 잘못을 했을 때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마이 뺀 라이'다. 태국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별것 아닌 일에 버럭 화를 내고 자기 분을 못 이겨 식식대는 외국인을 "왜 그래?"하는 눈길로 바라본다. 그게 아니꼬워 "넌 뭐야?"하는 감정을 담아 눈꼬리를 올리면 "마이 뺀 라이"하며 '끄렝짜이'하게 웃음을 건넨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어찌될 줄 모르고 남은 것은 오늘뿐인데 왜 어리석게 서로에게 상처주느냐고 되묻는 미소다.
이산의 풍경은 부담이 없다. 어서 와서 봐 달라고 보채지 않는다. 한적한 평원에 하얀 소가 어슬렁거리고 이방인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들이 미소를 보낸다. 상대가 불편하지 않아야 내가 편하고,나의 편의를 배려해 달라고 한 만큼 상대의 편의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는 '끄렝짜이'가 이방인을 평화롭게 반겨준다.
담백한 아름다움을 품은 묵다한
길이가 4020㎞나 되는 메콩 강은 이산지역을 엄마 품처럼 품고 있다. 중국,라오스,태국,캄보디아,베트남 등 5개 나라를 안고 있는 메콩 강은 깊은 역사만큼 넘치는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메콩 강을 사이에 두고 라오스와 맞대고 있는 묵다한에는 태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묵다한국립공원이 있다. 물 밑에 있다가 거대한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른 암석평원인 묵다한국립공원은 방콕보다 해가 18분 일찍 뜬다.
그래서 연말연초가 되면 이곳에서 새해맞이를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평평한 검은색 바위평원에 아로 새겨진 물결무늬는 이곳이 오랫동안 물 밑에 있었던 곳임을 보여준다. 한국의 가을 같은 쪽빛 하늘과 검은 색 바위,그리고 짙은 녹색의 열대우림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데다 은빛으로 빛나는 메콩 강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태국 영화 '옹박'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바람과 비가 세월의 손을 빌려 빚어냈다는 버섯바위 아래 쪽으로 낭떠러지 길을 조심스레 내려가다 보면 코끼리와 물고기가 붉은색으로 그려진 암벽화를 볼 수 있다. 암벽화는 3000~40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절벽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어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암벽화가 그려진 절벽 꼭대기에 흰 버섯 같은 게 붙어 있다. 바위틈에 집을 짓고 산다는 석벌이 모아 놓은 질 좋은 꿀인 석청이란다.
근처에 있는 금빛 불교사원을 돌아본 후 배가 출출해지면 메콩강변에 있는 인도차이나 시장으로 가보자.길게 늘어선 열대과일점과 튀기고 비비고 볶은 음식이 출출한 배를 자극한다. 얼음을 동동 띄운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인 후 파파야를 채 썰어 식초나 생선젖갈로 버무린 태국식 겉절이 '쏭탐',휴대용 보온도시락만한 대나무통에 고봉으로 눌러 담아주는 찹쌀밥,메콩 강에서 잡은 민물생선을 기름에 튀긴 튀김에 장작불에 구워 기름을 쏙 뺀 바비큐 치킨을 주문하면 어른 5명이 실컷 먹고도 남는다. 튀김과 바비큐의 느끼함과 '쏭탐'의 쌉쌀한 맛에 군침이 절로 나온다. 가격은 300바트(한화 약 1만2000원) 안팎.
태국음식은 향채인 팍치가 들어가다 보니 입맛 맞추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음식이 빠진 여행은 김빠진 맥주가 아닐까. 녹두 피에 당면과 채소 고기를 넣어 튀긴 '뽀빠아 톳',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해물 샐러드인 '암운센',볶음 쌀국수인 '팟타이',그리고 프랑스 부이야베스,중국 샥스핀과 함께 세계 3대 수프로 꼽히는 '톰얌쿵'의 새콤 달콤 매콤한 맛은 꼭 보자.
실로 맺은 인연,사콘나콘
태국은 축제의 나라다. 어느 지방을 가든 늘 축제가 있다. 축제는 손님맞이로 시작한다. 양손을 맞대 가슴에서 턱을 향하게 하고 머리를 숙이는 태국의 인사 '와이'로 반긴 여인이 먼곳에서 찾아온 손님의 오른 손목을 실로 정성껏 묶는다. 당신과 나는 이제 하나의 끈으로 맺어졌다는 뜻이다. 손목에 묶인 끈은 3일 동안 풀면 안 된다고 한다. 손님맞이가 끝나면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된다.
쪽색 옷을 입은 남자와 화사하게 치장한 맨발의 여인이 민속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남녀가 짝을 지어 돗자리가 깔린 마당을 빙빙 돌며 분위기를 잡는다. 흥이 웬만큼 오르면 둥글게 앉아있는 남녀 사이로 한 사내가 뛰어든다. 사내가 뛰어오르고 뒹굴고 나가고 뒷걸음질 하며 여인네들을 유혹한다. 여인네 주위를 돌던 사내가 드디어 한 여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뒤로 빼낸 오른발로 땅을 구른다. 주저하던 여인이 짝이었던 남자를 버리고 새로운 남자 품에 안긴다. 음악은 빨라지고 관중들은 환호한다.
이곳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관대하다. 등교하는 초등학교 학생들도 카메라만 들면 방긋 웃는다. 어른들도 사진 찍히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활짝 열린 미소는 이방인의 서먹함을 단숨에 풀어준다.
사콘나콘 지방은 별빛축제가 유명하다. 휘황찬란한 불빛을 뽐내는 루미나리에처럼 별모양으로 조형물을 자동차 지붕에 설치한 후 성탄트리에 쓰는 반짝이 등으로 한껏 치장한다. 별빛축제엔 100여대의 차량이 참가하는데 경품이 걸린 만큼 뽐내기 경쟁이 치열하다. 축제에 참가한 차량들은 해가 지면 거리행진을 시작한다. 평소 오후 7시가 넘으면 상점이 철시해 한적했던 거리가 갑자기 빛을 뿜어낸다. 하늘에선 별이 쏟아져 내리고 땅위에서 형형색색의 별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사콘나콘 지역엔 왕실에서 운영하는 실크농원과 각종 공예점이 많다. 특히 북부지방 사람들의 손 솜씨는 태국에서 손꼽힌다고 한다. 얼마 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 유럽정상회담인 아셈에 참석한 각국의 정상들이 입은 태국 민속의상도 이곳에서 만든 실크로 지었고 PGA투어우승컵 도자기도 이곳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한적한 시골풍경에 조금 실증이 날 즈음 왕실 별장으로 가보자.사콘나콘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별장으로 왕실가족이 북부지방을 방문할 때 쉬어 가는 곳이다. 군인들이 지키는 정문을 머뭇머뭇 통과하면 온갖 꽃들이 만발한 별천지가 펼쳐진다. 별장안 관람객들을 위한 매점에서는 왕실 소속 요리사가 열대과일을 재료로 만든 과자와 인공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각종 주스를 맛볼 수 있다.
이산(태국)=글·사진 이병철 기자 heads@hankyung.com
여행 Tip
태국 북서부지방인 묵다한과 사콘나콘 지역을 가려면 방콕에서 우본 라차타니까지 비행기로 1시간 정도 이동한 후 자동차로 3시간 정도 더 들어가야 한다. 묵다한국립공원 인근에 있는 써이싸완폭포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천주교 신자라면 나콘파놈 지역에 있는 농썽 마을을 방문하는 것도 좋을 듯.국민의 95%가 불교신자인 태국이지만 농썽마을은 주민의 90%가 천주교신자인 이색 지역이다. 사콘나콘에 있는 빤 타레도 찾아갈 만하다. 이곳은 태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천주교 공동체가 자리잡고 있다. 천연염색에 관심이 있다면 빤 판나 지역에 있는 염색공장을 둘러볼 만하다. 염색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태국정부관관청 서울사무소(02)779-5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