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 데이비드 리비트 지음│고중숙 옮김│승산│408쪽│1만8000원

알렉산더 매켄드릭 감독의 '흰옷 입은 사나이'에는 닳지 않는 옷감을 발명한 화학자 스트래튼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만든 옷감은 닳지도 않고 더러워지지도 않는 '기적의 섬유'였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길 것을 우려한 노동조합 동료들과 섬유회사 주인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한다.

사람들은 그 옷감으로 흰옷을 만들어 입고 있는 스트래튼을 붙잡아 옷을 없애버리려고 한다. 나중엔 그를 죽이려고까지 한다. 마지막 순간에 옷감이 스스로 분해되면서 그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1912~1954)의 전기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은 이 얘기부터 시작한다. 영국이 낳은 천재 수학자 튜링의 기묘한 인생이 영화 속의 스트래튼과 닮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트래튼이 '발명 때문에' 쫓긴 것과 튜링이 '발명에도 불구하고' 쫓긴 차이는 따로 있다.

스트래튼의 '흰옷'은 실패한 발명으로 끝나지만 튜링의 '가상적 및 실제 기계'는 2차 대전의 연합군 승리와 컴퓨터 시대의 개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에 동성애와 자살,과학적 상상력과 20세기 전반의 시대 상황이 겹쳐져 그의 일생은 더욱 드라마틱해진다. 튜링은 정보과학과 인공지능의 창시자로도 불린다.

논리학과 생물학을 연결시킨 공적 덕분에 생물학과 철학 이론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가 스물네 살 때 내놓은 논문은 위대한 수학적 과제에 도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결정가능성 문제(decidability problem)'라고 불리는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가상적인 기계를 상정했다.

이 '튜링기계'는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실제로 구현됐고,이 덕분에 연합군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인공지능의 최고 권위자가 됐다. 하지만 그의 컴퓨터 제작은 '반동성애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면서 갑작스레 중단되고 말았다.

"구속되고 난 뒤 그에게 남은 짧은 삶은 비탄과 광기를 향한 느리고도 슬픈 추락의 길이었다. 도덕적 죄목으로 재판을 거친 그에게는 감옥에 가두는 대신 동성애를 '치료'하기 위한 에스트로겐요법을 받으라는 선고가 내려졌다.

에스트로겐 주사는 화학적 거세 효과를 가져온다. 게다가 치욕적인 부수적 효과도 뒤따른다. 달리기를 좋아했던 야윈 사람에게 살이 불어나고 젖가슴이 자라났다. "

이 같은 굴욕과 호르몬 불균형에 따른 부작용은 그를 자살로 내몰았다. 그는 몇 입 깨물어진 사과 옆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그의 사인을 두고 여러 추측이 많지만 그의 집에 시안화칼륨(청산가리) 등 화학약품이 많았다는 점에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독이 묻은 사과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인터넷에서는 애플컴퓨터사의 로고가 튜링의 사과를 가리킨다는 소문이 떠돈다.

회사에서는 이를 부정하면서 오히려 이는 뉴턴의 사과를 암시한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왜 한입 베어져 있을까?'라고 되묻는다.

튜링의 의식세계와 컴퓨터 발명,수학사의 뒷얘기를 촘촘하게 엮어낸 저자의 역량이 돋보인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