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발전노선과 외교전략은 대개 정부나 기관의 몫이어서 일반인이 얻어 보기가 쉽지 않은 터인데,그것을 개인의 힘으로 논한다는 것은 상당히 벅찬 일이다.
특히나 짤막한 논문 형태의 제언 정도는 몰라도 조화된 시각으로 다방면을 검토한 끝에 이를 한 권의 저서로 묶어낸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근대 최초의 국가외교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책략(朝鮮策略)》(1880년)이 정치적 영향에 비해 상당히 짧은 분량의 문서였던 것도,그것이 황준헌이라는 일본주재 청국 외교관의 '사사로운 제언(私擬)'이었던 탓이 크다.
물론 순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이뤄진 상당히 두껍고 종합적인 국가전략도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국내에도 번역된 예쯔청 베이징대 교수의 《중국의 세계전략》(2005년)이 그것이다. '은근한 가운데 힘을 기른다(韜光養晦)는 전략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
개혁개방 3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부터는 중화부흥을 위해 《대국굴기》에 나서야 한다'는 게 골자였는데,실제 후진타오 2기 정부는 지난해 3월 전인대에서 '21세기 슈퍼파워' 노선을 천명한 바 있다.
지난 2006년 한반도선진화재단을 만들어 이끌고 있는 박세일 서울대 교수가 우리나라 국가전략을 담은 두툼한 책 《대한민국 국가전략》을 내놨다. '대한민국 세계전략,선진화혁명,그리고 공동체 자유주의'라는 긴 부제가 말해주듯 국가사회 발전과 외교전략은 물론 정치사회의 근간에 자리잡아야 할 이념까지 폭넓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박 교수의 출발점은 '지난 세기 이후 우리나라에 과연 제대로 국가전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는가'라는 문제의식이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자마자 냉전이라는 세계 틀 속에 편입됐고,미국의 세계전략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편승해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1970년대 개발독재시대까지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던 먹고사는 문제가 곧 국가전략의 전부라고 간단히 치부해온 관성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저자가 제시하는 국가전략은 선진화로 집약된다. 강소 지방정부 같은 준연방제 수준의 국가시스템 개조론이나 연구개발(R&D) 집중투자론 등의 구상이 실천과제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역시 저자가 주장하는 공동체자유주의 개념이다. 선진국 진입은 개인의 자유 못지 않게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에 대해서도 똑같이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만 가능하다.
이것은 절대적인 개인의 자유 쪽이 강조된 나머지 심각한 불평등사회로 꼽히게 된 미국식에 대한 반면교사로 읽을 수 있다. 건강하고 유덕한 공동체 속에서만 개인의 자유가 더욱 만개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국민통합이 보장돼야만 국가발전도 가능한 것이다. 좋은 개념과 구상은 묵혀두고 때때로 다듬어야 빛나는 법이다. '학행일치(學行一致)'에 힘써온 저자의 정교하고 단단한 성과를 기대한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