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미 <더모델즈 대표 somi7@paran.com>

"저도 남들처럼 주말엔 가족과 여유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바쁜 일정에 쫓기면서 사는 것도 이젠 너무 힘들어요. "

10년 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온 한 직원이 2008년 마지막 쇼를 마치고 나서 하소연하듯 속내를 털어놓았다. 휴일을 반납하고서라도 일하고 싶어 하는 필자와 다른 것이 서운하기도 했지만,10년 동안 수많은 행사를 치르느라 맘고생 몸고생이 얼마나 컸을까 싶어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패션쇼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호흡을 맞춰야 성공적인 무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서로 맞물린 톱니바퀴같아 누구 하나라도 실수하면 쇼를 망친다. 패션쇼는 100% 생방송 무대다. 이 때문에 막이 내릴 때까지 필자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두렵다.

영상으로 자료를 내보내는 무대를 예로 들어보자.서로 맞춰 놓은 콘티가 있는데,누군가 큐 사인을 잘못 알아듣고 다른 영상을 내보내면 영문을 모르는 음향이나 조명파트는 당황하게 마련이다. 모델은 모델대로 다음 순서가 누군지 몰라 갈팡질팡하고,옷을 입혀주는 사람도 뭘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할 게 뻔하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필자의 언성이 높아진다. 아니,스태프 간 교신용 무전기를 통해 실수한 사람을 꾸짖는 원색적인 말이 쏟아진다. 1초가 급한데 예의 갖춰 가며 지시를 내릴 겨를이 없으니 어찌 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한번 야단맞은 직원은 "태어나서 그렇게 심한 모욕을 당해 본 적 없다"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무단결근을 하거나 사표를 내기도 한다. 욕먹는 것은 둘째치고 1년 365일 쉴 틈 없이 야근과 밤샘작업을 거듭한다. 연출자가 쉬엄쉬엄 하면 좋으련만 한 번도 일을 쉽게 하지 않으니 내로라하는 전문가라고 해도 힘들고 지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밑에 사람에 대해 생각해본다.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건 인생의 동반자일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든 십년지기 친구든 저마다 인생의 동반자가 있다. 필자의 평생 동반자는 회사 동료들이다. 길게는 20년,짧게는 10년 가까이 함께 한 그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회사가 만들어졌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을 것이다. 더불어 지금의 필자도 없다. 다들 고맙고 소중하다.

십년지기 동료의 볼멘소리를 들은 날 그에게 편지를 썼다. 모처럼 고맙다는 말도 하고,미처 헤아리지 못한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회사 조직개편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그들이 나를 믿고 따라와준 만큼 나도 그들을 믿고 존중한다.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돈도,권력도 아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에 사람이 없으면 일을 잘하기도 어렵거니와 보람도 없다. 불황이라고 여기저기서 힘겹다는 소리가 들리지만,이럴 때일수록 서로를 감싸주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불황을 이기는 진짜 힘이고 살맛나는 일터를 만드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