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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데스크] 소주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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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들어 물가가 천정부지인 와중에도 안 오른 것이 두 가지 있었다. 바로 소주와 담배다. 즐거워도 한잔,슬퍼도 한잔,괴로워도 한잔,할 일 없어도 한잔….소주는 단돈 1000원과 동전 몇 개로 취할 수 있는,세상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높은 술이다. 그래서 소주에는 '서민주'나 '국민주'란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소주값이 출고가 기준으로 50원 올랐다. 소매점에선 이 틈을 타고 100~200원이나 올려 받는다. 소주는 투명한 병에 담겼으니 과자처럼 용량을 줄이는 편법 가격 인상이 어렵다. 그렇다고 주원료인 주정을 덜 넣을 수도 없는 일이다. 사실 모든 물가가 뛰는데 작년 5월 이후 안 올리고 참아온 게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주당들은 예리(?)하다. 그들의 분석에 의하면 소주는 지난 수년간 여러 경로로 간접 가격 인상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첫째 알코올 도수 낮추기.25도였던 소주가 어느덧 19.5도까지 20% 이상 떨어졌다. 도수를 낮춰 4병 만들 주정으로 5병을 만드니 '원가 절감'이요,예전만큼 취하려면 20%를 더 마셔야 하니 '매출 증대'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소비자들이 '순한 소주'를 선호해서 그렇다고 소주업체들은 항변하지만 이런 '마술'을 마다할 리 없다. 소비자들이야 만들어 파는 대로 사 마실 수밖에….

    둘째 한 소주업체 직원의 아이디어라는 소주잔 키우기다. 360㎖(2홉)짜리 소주 한 병을 판촉용 소주잔에 따라보면 과거 8잔이던 것이 요즘에는 7잔 남짓 나온다. 소주 용량은 그대로인데 잔이 약간 커졌다고 한다.

    여기엔 판매량을 극대화하는 수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7은 10 이하 자연수 중 가장 큰 소수(素數)다. 즉 1과 자신 이외의 숫자로 나누면 반드시 나머지가 생긴다. 따라서 둘 또는 넷이 한 병을 마시면 한 잔이 모자라고,셋이나 여섯이 마시면 한 잔 남는다. 다섯이서 2병을 세 잔씩 돌려도 한 잔이 모자란다. 물론 7명이 마시면 딱 떨어지지만 한 잔 마시고 취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몇 명이 마시든 "아줌마,여기 한 병 더요!"를 외치게끔 만든다.

    국민들은 작년에 총 33억2000만병의 소주를 마셨다. 1인당 70병꼴이다. 미성년자를 빼면 1인당 100병에 육박한다. 사나흘에 한 병씩 비운 셈이다. 올해는 지금까지의 증가 추세(3.5%)에 비춰 34억3000만병에 이를 전망이다. 따라서 출고가 50원이 오르면서 소주업체들은 내년 매출이 1700억원가량 늘어난다. 덩달아 국세청 주세 수입도 짭짤할 테고….

    이번 소주 가격 인상으로 성인 한 명당 추가 부담은 연간 5000원 정도 늘어난다. 무시해도 될 수준이다. 그러니 소주값 올렸다고 시간과 차비를 들여가며 항의 시위를 벌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무시'인 셈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때 국민들이 '×판' 치는 국회나 방만 경영한 공기업에 달려가 멱살잡이 안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먹고 살기 바빠 그냥 욕하고 외면할 뿐이지 용인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착각들 마시라.

    이래저래 열 받는 요즘 서민들은 술 담배 빼고 무슨 낙이 있으랴.소주값이 올라도 '30억 쏜다'는 병뚜껑 경품 이벤트에 혹해 오늘도 소주병을 딸 것이다. 이제 안 오른 것은 담배뿐.또 한 가지 있다. 월급도 안 올랐다.

    오형규 생활경제부장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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