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추위가 한창이지만 '패션 시계'의 시침은 벌써부터 따사로운 봄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 가을 파리ㆍ밀라노ㆍ런던ㆍ뉴욕 등 세계 4대 컬렉션의 디자이너들이 발표한 '2009 S/S'(봄ㆍ여름) 시즌의 트렌드는 브랜드라는 여과지를 거쳐 대중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게 다듬어졌다. 각 백화점의 연말세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매장마다 꽃이 만발한 봄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맘에 든다고 몽땅 산다면 얇아진 당신의 지갑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렇다고 패션과 담 쌓고 지낼 수도 없는 일.이럴 때일수록 당신이 갖고 있는 아이템들 중 활용할 수 있는 것과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하고 그에 맞춰 쇼핑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먼저 여성복의 다가올 트렌드에 맞춰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 Have Item)'과 '머스트 헤이트 아이템(Must Hate Item)'을 살펴보자.

◆1980년대,아프리카,자연주의

패션계에서는 '불경기엔 미니와 블랙이 트렌드를 주도한다'는 속설이 있다. 최악의 불황이 예고된 내년 상반기를 앞두고 패션 디자이너들은 어떤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을까. 예전처럼 불황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디자이너들은 불황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화사한 패션에 올인하고 있다. 내년 봄 시즌을 관통하는 패션 키워드는 '1980년대,아프리카,그리고 자연주의'로 요약된다. 한동안 로맨틱한 1930년대나 풍요로웠던 1950년대 스타일에 몰입하던 패션 디자이너들이 이번엔 1980년대행 타임머신에 올라탔다. 패드가 들어가 다소 과장된 어깨 라인,부풀려진 파마머리,그리고 스노 진 등이 그 시절을 대표하는 스타일들이다.

◆머스트 해브 아이템

그래서 한동안 종적을 감췄던 데님들이 다시 여성들에게 사랑받을 게 틀림없다. 물론 내년에 유행할 청바지는 2006,2007년 핫 아이템이었던 '스키니 진'이 아니다. 실제로 아메리칸 스타일의 대표적인 '스노 진'(일명 곰팡이 청바지)이나 전통적인 실루엣의 '리바이스 501'처럼 여성들이 터부시하던 밑위가 긴 복고풍 청바지들이 인기를 끌 것이다.

이런 저렴한(?) 브랜드뿐 아니라 피에르 발맹이나 준야 와타나베 같은 디자이너들도 파리 컬렉션에서 워싱된 데님을 선보였고,'랑방'의 디자이너 앨버 알바즈도 스웨덴 '아크네 진'과 협업을 통해 '청바지 사랑' 대열에 동참했다. 특히 발맹의 다소 남성적인 스탠드 칼라 재킷을 매치한 청바지 룩은 내년 봄에 반드시 참고해야 할 최고의 스타일링이지 않을까 싶다.

지난 가을 컬렉션에서 강하게 불었던 아프리카 열풍이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두 개쯤 갖고 있을 민속적인 느낌의 뱅글,목걸이 등을 통해 유행의 최전선에 등장할 것이다.

아울러 플라워 프린트는 자연주의 물결을 타고 올해 활짝 피어난 데 이어 다가올 봄에도 여성들에게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게 만들지 모르겠다. 다소 각진 재킷 혹은 일명 청카바로 불리우던 데님 재킷,컬러풀한 레깅스 등은 '고고 80'의 핵심 아이템들이기도 하다.

◆버려야 할 아이템

오랜동안 먼지 쌓여있던 '노장'(?)들이 다시 고개를 내민 것과 반대로 얼마 전까지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다가 이젠 퇴역식을 치러야 할 '머스트 헤이트' 아이템들도 있다.

가장 먼저 꼽을 것이 메탈릭으로 대표되는 퓨처리즘.디자이너들의 외면 속에서도 수년간 명맥을 유지해온 퓨처리즘은 아예 고사 직전에 이른 것.최근 주요 트렌드였던 건축적인 실루엣의 퇴조는 이보다 훨씬 두드러진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모든 패션 관련 칼럼은 프랭크 게리의 디즈니 홀을 닮은 '질 샌더'의 패턴에 대해 다뤘지만,이젠 전통적인 실루엣이 득세하고 있으니 '상전벽해'란 말은 이럴 때 쓰나보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트렌드도 알게 모르게 불황의 영향을 받고 있다. 불황이 장기화되는 한,패션 브랜드들은 당분간 과감한 시도를 자제하고 대중들이 쉽게 입을 수 있는 스타일에 주력할 것이다. 소비 역시 갖고 있는 옷들에 매치할 수 있는 기본 아이템들로 집중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가올 봄에 진정한 멋쟁이로 거듭나려면 백화점에 들르기에 앞서 장롱 속 어머니가 입던 촌스런(?) 청바지와 원피스,패드가 들어 있는 남성적인 재킷들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월간 '하퍼스 바자' 패션에디터 kimhyeont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