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계약 성사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매각 과정에 정부가 직접 중재 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금융위기 여파로 인한 인수자금 조달의 어려움과 실물경기 침체로 인한 대우조선의 기업가치 하락 등으로 인해 한화그룹의 대우조선 인수가 어려워지면서,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이 유연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화 측은 이미 이달 초부터 여러 차례 본계약 및 인수대금 최종 납부시기 등 주요 조항의 재조정을 산은에 요구했지만,산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결국 양측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 대우조선 매각은 사실상 무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잔금납부 연기” VS “예외조항 없다”
29일로 예정된 대우조선 인수 본계약을 앞두고 한화 측의 자금조달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재무적투자자(FI)들로 나서기로 했던 은행들이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당초 예정했던 만큼의 대출에 난색을 표하면서 자금 조달 작업이 어그러지고 있다.

한화는 일부 계열사 매각까지 검토했다. 하지만 실물경기 침체로 인해 제 가격을 주고 살 원매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또 대우조선의 기업가치도 급락하고 있다. 지난 8월 매각공고 당시 3만6200원이던 대우조선의 주가는 최근 1만6900원(24일 기준)으로 떨어졌다.

한화는 결국 6조원대의 인수자금 마련이 불가능해지자 최근 지난달 체결한 양해각서(MOU)상 본계약 시기 및 인수대금 잔금 납부시기 등 주요 조항의 재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인수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사태를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로 인한 천재지변 상황으로 봐야 한다”는 게 한화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산은 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계약서상 명기된 인수대금 납입 시기 및 방법을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산은 관계자는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한화 측에 예외를 적용해주면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매각 무산되면 향후 대형 딜도 잇따라 차질

대우조선 매각이 중단되면 한화나 산은에게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화로서는 기업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은 물론 이행보증금 3000억원을 고스란히 날릴 수밖에 없다. 매각 당사자인 산은도 매각 자금을 중소기업 지원 등에 사용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기 때문에 매각이 무산되면 골머리를 앓을 수 밖에 없는 처지다.

특히 한화와 산은이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대우조선 매각 작업이 무산되면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질 전망이다. 우선 대우조선에 1조637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산은과 자산관리공사(캠코)는 약 5조원에 가까운 공적자금 회수 및 투자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향후 재매각이 이뤄지더라도 대우조선 지분 50%의 가치는 3조원대로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M&A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산은과 캠코 측이 3조원이 넘는 기회비용 손실을 입어야 한다는 얘기다. 매각 지연에 따른 손실도 따로 따져봐야 한다.

M&A업계 관계자는 “대우일렉트로닉스,외환은행,쌍용건설 등 최근 매각 실패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며 “대우조선은 특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처음 진행되는 대형 매각 작업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우조선 매각이 무산되면 재매각 작업 자체가 최소 2년이상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대우조선의 조기 정상화는 커녕 경쟁력 약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2004년 세계 2위이던 대우조선의 연간수주 순위는 올해 3위로 떨어졌으며, 설비투자 규모도 과거 5년동안 삼성중공업의 절반에 가까운 연 2400억원에 그쳤다. 우수 기술인력 이탈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대우조선 매각이 실패하면 향후 하이닉스,현대건설 매각이나 공기업 민영화 작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가 기간산업의 정상화 작업이 지체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나서야

한화와 산은 측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매각 무산 우려까지 제기되자 시장 안팎에선 결국 정부 차원의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거 외환은행 매각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번 대우조선 매각 과정도 향후 문제의 소지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대우조선 매각에 대한 공론화 작업을 거쳐 산은이 유연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논리다.

청와대와 감사원 등이 산은과의 의견 조율을 거쳐 산은의 최종 정책 결정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보장해줘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산은이 내놓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인수대금 분납을 꼽고 있다. 인수대금의 합리적인 조정과 함께 최근 악화된 금융 여건을 반영해 매각대금의 40%는 내년 3월말까지 지급하고 나머지 60%는 최소 2~3년 정도 지불유예기간을 둬야 한다는 식이다. 당초 잔금 완납 시점인 내년 3월30일 이후부터는 추가 금리를 매기면 산은으로서도 명분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6조원대에 달하는 인수 대금 자체를 변경하면 특혜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잔금 납기일을 수년간 미뤄주는 본계약을 체결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경닷컴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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